선고 공판은 당초 10일이었으나 서울고법측은 사건 기록이 방대하고 쟁점이 많이 기록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31일 오후 3시로 공판을 연기했다.
정 회장은 2001년 이후 비자금 693억원을 조성하는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검찰은 지난 달 19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선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이런 가운데 법조계의 관심은 정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느냐, 아니면 집행유예를 선고하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정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할 경우 현대자동차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고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재계측의 주장을 나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재벌총수 봐주기 논란에 따른 법조계와 시민사회단체간의 공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은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 정 회장 선고, 재계ㆍ법조계 초미 관심 = ‘보복 폭행’과 관련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자 오는 31일로 예정된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그룹 회장의 선고공판에서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재계와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실형 선고’에 따른 ‘구속’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첫번째 이유는 정몽구 회장으로 인해 한국 기업의 대외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기 때문이라는 법조계의 지적 때문이다.
지난 달 19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1심 재판부는 비자금 조성 당시 경영 사정상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정상을 참작했지만, 비자금 규모가 1천억 원대에 이르고 이로 인해 한국 기업의 대외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기 때문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적으로 현대자동차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가운데 일부 국가에선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따른 재판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덩달아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국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 회장의 비리가 한국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실형 선고로 구속될 경우 그룹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재계의 주장도 최근 들어선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듯, 모든 기업도 평등하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검찰은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어느 기업이나 회장은 다 마찬가지”라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구속됐는데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이 뭐가 다르냐”고 지적했다. 법조계 내부에선 1조원 사회환원 약속으로 정 회장이 실형을 면하게 될 경우 형사재판의 나쁜 선례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가는 게 맞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집유’ 가능성 높아 = 그럼에도 재계와 법조계 일각에선 김승연 회장과 달리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가장 큰 이유는 김승연 회장에 이어 정 회장에게도 실형이 선고될 경우 현대차는 물론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법원이 ‘재벌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난을 감수한 채 현대차의 경영을 고려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목소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예로 한화그룹측은 “대부분의 글로벌 사업은 김 회장이 직접 추진해 온 사안”이라며 “김 회장의 장기 구속으로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김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각종 해외사업들은 그의 구속으로 제동이 걸린 상태다.
결국 “경영을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현대차에게 너무나 중요한 2~3년간 국가경제를 위해 마지막으로 기여할 기회를 달라”고 정 회장이 항소심 마지막 공판에서 선처를 호소한 대로, 법원은 정 회장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임종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 회장에 대한 실형선고로 정 회장의 ‘유고’ 상황이 생길 경우 기아차 부도 사태 이사의 위기를 맞을 것이고, 특히 그룹이 존망의 위기를 맞음과 동시에 국부손실도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현대ㆍ기아차가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경쟁을 시작한지는 지난 IMF 이후 불과 7~8년”이라면서 “국제시장에 겨우 모습을 드러낸 현대차의 현재 시점에서 정 회장의 부재는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면에서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은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에 대해선 면죄부를 줘야 한다는 것도 그의 생각이다.
현대ㆍ기아차가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는 점도 법원을 압박하는 요소다. 재계를 중심으로 ‘여수 세계엑스포=정몽구 회장’이란 공식이 통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11월 세계엑스포 개최지를 결정할 때까지 정 회장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걸음이 더욱 빨라져야 하는데, 만약 구속될 경우 유치활동에 큰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