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노사합의사항 거부, 사측이 일방적으로 FM직렬 책임자 공모” 주장
사측, “기타 직렬 인사적체 심하기 때문” 행장실 방문 노조간부 경찰 고소
하나은행의 ‘독특한’ 직원 신분 가운데 하나인 ‘FM직렬’을 둘러싼 이 은행의 노사갈등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 노동조합(위원장 김창근)은 사측이 최근 ‘FM직렬 책임자를 공모한다’는 내용을 밝힌 뒤 노조측이 이를 거부하자 지점장급 임원들이 직접 나서 공모신청을 종용, 직원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에 반대하는 노조측이 본점 로비에 천막을 설치하고 ‘강제 공모 철회’를 촉구하며 여성 부위원장들이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자 은행측이 노조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발하는 등 강경자세로 나와 노사간 갈등이 악화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 달 25일 오후 6시30분께 ‘FM직렬 책임자를 공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사내 통신망에 올렸는데 노조측은 “(인사제도는) 노사합의사항임에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시행했다”며 강력히 저항하고 직원들 역시 신청을 거부했다.
이에 사측은 “FM직렬로 옮길 경우 책임자로 승진시켜준다”고 발표, 7월 승진시즌을 맞이한 하나은행이 ‘인사제도’ 개편을 두고 양측이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다.
‘FM(플로어마케팅)직렬’이란 국내 은행 중 하나은행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인사제도로 월급도 작고 상대적으로 하위직에 가깝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영업점 단순 창구업무를 맡는 ‘FM직렬’은 현재 약 2천500명으로 대부분 여성으로 이뤄져 있고, 이 가운데 남자는 40여 명 정도다. 성차별적인 여건을 제거하기 위해 남성을 채용하지만 대부분 그만둔다는 게 노조측의 설명이다.
하나은행 노조 이병승 정책부장은 “80년대 후반까지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이 같은 제도(당시 여행원제도)를 유지했지만 91년 남녀고용평등법이 발표되면서 다른 은행은 없앴지만 하나은행만 이 제도를 FM직군제로 바꿔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차별적 요소 ‘직군제’ 하나은행만 유지한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노동청은 지난 2004년 이 같은 제도가 성차별적 요소를 갖고 있다며 2005년 1월까지 시정명령을 내렸고 같은해 10월에는 조치가 미흡하다며 하나은행을 서울지검에 고발하기도 하기도 했다.
실제 이 은행의 FM직렬군의 경우 신입사원 초봉이 약 2천5백만원인데, ‘종합직’인 남자의 경우 4천3백만원으로 급여 차이도 상당하다는 게 노조측의 주장. 검찰은 그러나 지난해 말, 노동청의 고발건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상태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하나은행의 경우 ‘FM직렬’군 이외에도 정규직을 채용할 때 ‘CL(클러크: 본점의 일반 사무직)직렬’과 ‘Staff(종합직)’으로 직무를 분리해 급여 및 성에 있어 차별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또 구 서울은행 등 하나은행에 합병된 은행 출신들로 구성된 ‘기타직렬’도 존재한다.
결국 지난 2002년 서울은행과 합병 이후 새롭게 출범한 하나은행 새 노조 지도부는 줄곧 “직렬마다 임금체계가 다르다”며 통합을 요구해왔고, 사측은 “임금 상승이 뒤따른다”며 이를 거부해오면서 이 회사 노사는 마찰을 빚어왔다.
이에 대해 사측 한 관계자는 “미묘한 문제”라며 “정확한 사측의 입장을 알지 못해 답변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은행측의 입장은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는 공문’에 대해 “기타직렬의 인사적체가 심각하기 때문에 ‘FM직렬로 옮길 경우 책임자(과장급 정도로 추정됨)로 승진시켜준다”는 내용이라고 밝힌 게 전부다.
사측 “미묘한 문제” 언급 피해
<매일일보>은 이와 관련 하나은행 공보실에 5개 항목의 취재질의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공보실 관계자는 “인력지원부에서 답변을 해줄 것”이라고 말했으나 결국 “답변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하나은행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직원 신분제에 대해선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은행에서 하는 일이 모두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없다”며 “직렬제에 따른 인력운영을 함으로써 입사를 지원하는 사람들도 해당 전형, 본인의 능력, 본인이 받고자 하는 임금에 맞게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FM직렬’군 이외에 CL직렬, 기타직렬 등은 지금으로서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노조측 반발에도 불구하고 왜 ‘FM직렬 공모’를 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다”며 끝내 답변을 피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하나은행은 노조 간부 6명을 폭력과 절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노조 간부들이 공문 발송 이후 은행장실을 점거, 1시간 30분 동안 ‘공모 취소’를 요구하며 시위를 했고, 이 과정에서 부서 직원과 몸싸움이 벌어져 사측 직원이 다쳤기 때문이다.
노조측은 이에 반발, 지난 달 30일부터 여성 노조 부위원장 2명(박경은, 김영란 부위원장)이 단식 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노조측은 “노조 간부 일부도 부상을 당했고, 여성간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사측은 폭력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지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금융노조 “하나은행과 총력투쟁 선포할 것”
노조 상급단체인 전국금융노조 김동만 위원장은 “경영진은 지금이라도 직렬공모라는 불법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노사협의회를 개최해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하나은행이 이를 거부할 경우 총력투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 한 관계자는 “금융노조의 경우 37개 은행이 가입돼 있고, 해마다 6명씩 대표를 뽑아 임단협 협상에 들어가는데, 하나은행 때문에 교섭에 차질을 빚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편, 직렬제 등 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이 회사 노사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의혹까지 겹치면서 양측이 정면 충돌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하나은행 노조는 사측이 최근 승진한 20여 명의 노조 분회장들을 대상으로 승진 취소 협박과 함께 분회장직 사퇴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오는 6일 김종열 행장과 박재호 경영지원본부장, 황인산 인력지원부장 등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하나은행 노사의 단체협약은 근무기간이 2년 미만인 분회장을 전보 발령할 경우 사전에 노조의 동의를 얻어 시행토록 규정하고 있다”며 “분회장직 사퇴를 강요한 것은 노사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이며 노조의 자주적 운영에 사용자가 개입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하나은행과 하나대투증권, 대투운용, HFGIB증권(옛하나증권) 등 하나금융지주의 4개 계열사 노조는 그룹 내 노사문제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위해 지난 달 31일 ‘하나금융 노동조합 협의회’를 출범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