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6.13지방선거 참패로 리더십이 줄줄이 붕괴된 야권은 역시 정계 개편 대신 선거구제 개편을 선택한 듯하다.
지방선거 이후 선거구제를 개편하자는 이야기는 지난달 29일 한국당에서 먼저 나왔다.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는 개헌 논의도 권력구조 개편, 선거구제 개편 논의와 더불어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라며 ‘개헌연대론’을 들고 나왔다. 모양새는 ‘개헌연대’이지만 실상은 ‘선거구제 개편연대’다.
지방선거 참패 전까지만 해도 한국당은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서 소선거구제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TK(대구경북)만을 간신히 사수하는 데 그치자 소선거구제는 시한폭탄이 돼 버렸다. 한국당을 날려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1년 10개월짜리 시한폭탄이다. 1등만이 승자가 되는 소선구제 하에서 2020년 총선을 치른다면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당이 다음 총선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거구제 개편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침 지난 선거구제 개편과정에서 민주당 등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들고 나온 데다 대통령 개헌안에는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그 밖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되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하여야 한다’(제3장 제44조 제3항)는 조항까지 등장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 수와 연동해 비례대표 의석 수가 결정된다. 한국당이 TK를 제외하고 완패를 해도 정당득표율에 따라 상당 수의 의석을 보장받게 된다. 반대로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완승을 거두어도 정당지지율이 60~70%에 달하지 않는 한 거대 다수당이 될 수 없다. 현행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넘어야 원하는 법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어 단순히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걸로는 국회 장악이 어렵다. 한국당에게는 구사일생의 동아줄이나 다름없다.
갑작스럽게 한국당에서 개헌론을 들고 나온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당에게는 보수 대혁신에 성공해 전열을 가다듬는다는 다른 생존법도 있다. 하지만 당이 쪼개질 위기상황까지 몰린 현재로선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이는 다른 야당들도 마찬가지.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도 다음 총선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비대위원장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에 찬성인지 반대인지 국민 앞에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며 민주당을 압박하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심지어 한국당을 향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당 내 문제를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 이벤트가 될 수 없다. 한국당의 적극적 의지와 진정성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고 말할 정도로 더 적극적이다. 정의당은 당 지지율이 오르고 있어 사정은 훨씬 낫지만 숙원인 선거구제 개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야권발 개헌론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