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호 경제] 오는 10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할 기업인은 누가 될까?
방북단에 참여하게 될 경제계 인물 가운데 일부가 재계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청와대가 구체적인 방침을 ‘공식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은 먼저 경제계 인사를 만나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그런 다음 대북경제 투자에 관심이 있고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인들과 함께 방북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정치적 문제도 포함돼 있지만 노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바 대로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구체화하는 방안이 양국 정상간 중심 과제로 논의될 전망 또한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방북에 참여하게 될 기업인들의 역할론에 재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재계와의 간담회부터 준비 중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재계와의 간담회를 위한 안을 만들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문제는 간담회의 ‘안’이 어떤 내용이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재계 인사 초청간담회를 통해 어떤 내용이 담긴 안을 경제계 인사들과 공유하느냐에 따라 제2차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방북대표단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참여할 재계 인사들의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방북단의 구성을 보면 공식수행원과 일반수행원, 특별수행원으로 구분돼 있다. 정치권을 비롯해 경제계를 포함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균형있게 포함시킨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 인사의 경우 청와대측은 ‘대북경제 투자에 관심이 있고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인들’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사실상 확정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호선 대변인은 이와 관련 “1차 회담때는 상징성을 가진 분들이 갔다. 그 분들을 (이번에) 배제한다는 뜻은 아니”라며 “하지만 남북간 경제협력에 필요한 분야의 인사들이 있을 수 있다. 가능하면 그분들을 포함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의 이 같은 발언은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방북단에 포함시킬 재계 인사들의 밑그림을 사실상 완성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 방북단 재계 인사 밑그림 완성한 듯
확실한 것은 평양에서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제공동체 문제’가 양국간 중심 과제로 논의될 것이라는 대목이다. 정상회담 일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경제공동체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북투자나 지원 등 대북경제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재계 인사들이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방북대표단 특별수행원에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지난 2000년 1차 정상회담처럼 경제단체와 재계 순위만을 감안해 ‘시찰 형식의’ 경제대표단을 꾸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외형성’을 강조하지 않고 남북경협에 내실을 기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로 풀이된다.
대통령의 외국 순방 때 통상 경제계에서는 20~40명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따라가지만, 지난 2000년 남북간 정상회담 때에는 이보다 적은 10명으로 구성된 바 있다. 당시 북한 경제의 특수성(폐쇠성)을 감안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차 정상회담 때는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 이원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경제단체 대표 4명, 구본무 LG회장, 손길승 당시 SK회장, 고(故) 정몽헌 현대회장, 윤종용 삼성 부회장 등 재계 인사 및 전문경영인 4명, 장치혁 당시 고합그룹 회장,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 백낙환 인제학원 이사장 등 이산가족기업인 3명 등 11명이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했다.
경제적 투자나 지원에 관심있는 기업인들 방북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번과 달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와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바람이 크기 때문에 경제적 투자나 지원에 관심이 있거나 실제로 역할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될 경우 특별수행원의 규모는 1차 정상회담 때보다 더욱 늘어날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때문에 방북단에 참여하는 재계 경제인 규모는 대략 20명 내외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내주중 정상회담에 대한 경제적 자문을 구하기 위해 경제단체장들과 대북기업 등 재계 인사들과의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물론 간담회에는 각 경제단체 대표들도 참석하게 된다.
정리를 하자면 방북대표단에 참여하게 될 기업들은 대북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로 압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으로는 삼성과 LG, 현대아산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며 롯데 등 대북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도 유력하다.
삼성그룹에서는 지난 2000년때처럼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전문경영인이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당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방북수행단에 참여했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방북수행단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현 회장의 경우 금강산 관광사업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애초 8월말에 방북계획이 잡혀져 있었던 만큼 일정을 조정해 정상회담 수행단자격으로 방북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0년 구본무 손길승 그룹회장이 직접 방북수행단에 참여했던 LG그룹과 SK그룹의 경우 청와대의 기업인 수행 범위를 본 뒤 논의를 거쳐 수행자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조석래 전경련 회장,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 등도 수행기업인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바빠진 ‘전경련’…재계 일각 ‘난색’
하지만 변수도 있다. 첫 번째는 경제인들이 대거 방북단에 포함되면 ‘정상회담이 대북 경제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 일각의 맹비난에서 현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북 사업효과의 실효성 때문에 기업인들이 방북에 적극적이지는 않다는 대목이다. 실제로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 16일 “북한 경제는 시장경제와 먼 체제로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의 발걸음은 바빠질 전망이다. 전경련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정식요청이 올 경우 기업들로부터 접수를 받아 수행기업인을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현재 정부가 협조요청을 해올 것에 대비해 남북경협 방안 등을 검토 및 정리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지난 번처럼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함께 일부 대기업들 중심으로 수행기업인이 구성될 가능성도 높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