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상식+모성보호 무심한 직장문화…모유수유율 36% 불과
[매일일보] 엄마들이 모여 모유수유 경험 이야기하면 남자들 군대 얘기만큼 무용담이 쏟아져 나온다. 임남희 MBC 시사교양국PD도 마찬가지다. 모유수유를 끝낸 임PD의 쌍둥이 딸들은 자신이 뒤늦게 가진 두번째 아이들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노산이었다. 임신 말기엔 임신중독증에 출산 후 대동맥 파열로 위급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밤을 지냈다. 어느날 새벽에 맘좋은 간호사가 아기들을 데리고 왔다. 그때 "지금 수유하면 안되나요…"란 말을 꺼냈다. 그러나 모유수유는 하지 않았다. 주변의 적극적인 만류 탓이었다.
병실로 이동해 신생아실에서 아기들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이미 분유로 포식을 했다지만 36주에 2.25㎏, 2.5㎏로 작게 태어난 아이들은 다행히 입을 오물거리며 잘 빨았다.
이 때부터 모유수유한다고 덤비는 내게 병원에선 쌍둥이 배곯는다고 걱정이었다. 한 시간씩 젖을 먹여 보내도 우유병 물리면 분유를 쭉쭉 빤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처방이 내려져서 미숙아분유를 먹여야 한다고 했다.
의사선생님 말씀을 무시할 만큼 용감한 엄마가 못되었던 나는 보충수유를 부탁했다. 집에 와서 며칠에 걸쳐 분유를 완전히 끊었다. 둘이 깨는 시간이 다르고 먹는 시간도 길어서 한시간 반마다 수유를 하고 한번에 30~40분씩 앉아 있다보니 잠잘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임PD는 모유수유 전문클리닉을 찾았다. 거기서도 역시 아이들 체중이 잘 늘지 않았다고 더 열심히 먹여야 한다고 했다. 셋째보다 더 작게 태어나 입도 작은 둘째는 젖을 물 때 입을 크게 안벌려 젖꼭지는 상처와 딱지로 범벅이 돼 있었다.
아이들이 먹으러 다가오면 온 몸이 움츠려들고 진저리가 쳐질 시기였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입모양이 자리를 못 잡았기 때문에 더욱 더 직접수유를 해야한다고 했다. 유축기로 짜서 젖병에 먹여야 잠도 좀 잘 텐데…. 정말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젠 좀 그만 먹여도 되겠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반가운 걱정이 들려왔다. 체중이 평균을 웃돌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아이 둘을 동시에 수유하는게 수월해졌고 젖먹이는 시간도 벌어졌다.
이제는 수유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아이와 눈맞추며 이야기하는 시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됐다. 아이들이 배고파 울며 달려들 땐 내가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어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임PD는 모유수유를 고집한 이유를 당당히 말했다.
"돌이켜 보면 역시 녹록치 않은 수유기였습니다. 이제 17개월이 된 쌍둥이를 완모한 덕분에 나는 어느새 특별한 엄마가 된 것 같아요. 젖먹이여 보겠다고 고생하며 안간힘을 쓰던 나에게 틈만 나면 분유 먹이라던 식구들과 친지들, 종종 뭐하러 그렇게 모유수유를 고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더 좋다니까 그리고 노력하면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요'라고 말했어요."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렵게 태어나는 한 명 한 명의 아기들을 제대로 보살피려는 노력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사회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모유수유를 하기에 많은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비난한 청년들의 기사가 세간에 논란이 됐다는 것도 한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모유수유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도 8월1일부터 7일까지 '세계모유수유주간'으로 지정해 운영해오고 있다.
모유수유는 아기의 평생에 걸쳐 육체적, 정서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장점이 많다. 모유를 먹이면 어머니와 아기의 정서적인 유대감을 증진시켜 준다.
모유수유를 받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호흡기 질환이나 소화기계 질환, 변비, 알레르기 이환율이 낮다. 정신적 안정감도 갖는다. 아동기의 비만 위험이 낮고 성인이 된 후에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 암이나 알레르기 질환과 같은 만성적인 질병의 발생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경제적인 면에도 이득을 준다. 젖을 먹인 여성들은 유방암이나 난소암의 발생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져 건강보험 재정을 도와 줄 수 있다.
분유를 사는 데 드는 직접 비용에다가 자녀나 본인의 질병으로 인한 노동력의 손실까지 감안한다면 의학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유수유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모유수유율은 1970년대 90.0%였으나 1982년 68.9%, 1997년 14.1%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00년 이후 증가하기 시작해 2006년 26.8%, 2009년 36.2%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한국산후조리업협회의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모유수유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산후조리원 퇴소 시점의 완전 모유수유율은 약 49%로 조사됐다. 산후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실천하는데 주된 어려운 점으로는 '산모의 모유수유 의지부족'이 70.3%로 가장 많았다.
제2대 모유수유 홍보대사를 지낸 서울가정법원 신한미 판사는 모유수유 포기를 권하는 현실들에 대한 이유들을 나열했다.
우리사회에서 모유수유가 멀어지는 것은 산모 개인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신 판사는 말했다.
신 판사는 "개인적인 이유는 올바른 모유수유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모유를 오래 먹이면 영양이 없다거나 엄마의 몸매가 망가진다든가 등의 잘못된 상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임신과 출산 후에 제일 먼저 접하는 산부인과 병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산부인과 병원들은 모유수유 교육 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입원실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안정적으로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서는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유급 출산휴가 기간이 좀 더 연장돼야 한다"며 "또한 직장 내에 모유수유실이 설치돼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문가들도 우리나라는 모유와 관련된 산모지원과 지역사회 활동은 아직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턱없이 못미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모유수유 증진을 위한 정부, 의료진, 일반국민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화여대 김영주 교수는 "저소득층을 위한 산전 및 산후에 실시하는 모유영양증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모자동실을 시행하는 병원, 산전교육 실시,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등에 대한 혜택이 필요하다. 또 모유수유 내용을 교과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