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일각 ‘노심, 이해찬으로 흐르고 있다’
이해찬 지지율 바닥, 남은 1주일 盧의 선택은?
[매일일보닷컴] 한나라당마저 이번 정상회담을 대체적으로 긍정 평가하고 있다. ‘대선 이벤트용’이라며 정상회담 전 호들갑을 떨었던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이명박 후보 측 김형주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치솟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30%를 돌파했다. 2005년 10%, 2006년 20%대와는 확연히 다른 결과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레임덕을 비껴가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레임덕을 피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힘’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특히나 선거판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대선을 70여일 앞둔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처럼 정치적 의사 표현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이번 대선구도에서 노 대통령은 그야말로 ‘변수’ 가운데 최고의 ‘변수’다.
사실 누가 뭐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선거중립의무 위반으로 선거법 위반 결정을 받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위헌”이라며 선관위 결정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대선 주자들에 대해 우회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점잖게 비판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정치생명에 위기를 줄만큼 ‘위험한’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의 ‘직격탄’을 맞고 정치권 밖으로 떨어져 나간 대선 주자들도 상당수에 이를 정도다. 물론 특정 대선 주자에 대해선 직ㆍ간접적으로 지지의사를 내비치기도 한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선 공개석상에서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형편없고 참여정부의 인기가 형편없을 때는 범여권 후보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통합신당 창당 이후 정동영, 손학규 두 대선 예비후보에 대해선 ‘반감’과 ‘섭섭함’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그림으로 해석해볼 때, 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노심’(노무현의 속뜻)이나 ‘청심’(청와대의 속뜻)이 이해찬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지난 5월부터 이미 정가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나올 경우 이해찬 카드가 유력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치범 전 환경부장관은 “노심이 이 전 총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심, 이해찬 총리에게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선거 판세는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변양균, 정윤재 등 노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으로 ‘친노 주자’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정동영의 가치는 급증하고 있고, 이해찬의 지지율은 하락 추세다.
통합신당의 경선방식이 ‘순회경선’에서 ‘원샷경선’으로 바뀜에 따라 정동영 후보의 1위 독주체제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의 지지율은 여전히 상승하면서 여론조사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일단 노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를 더 이상 공격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현재의 선거 판세가 노 대통령의 의중(?)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여태껏 경제 이슈로 지지율 1위를 고수한 이명박 후보가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범여권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남북정상회담을 틈타) 대북 화해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까닭에 노 대통령으로서는 향후 대선 정국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셈이다.
이럴 경우 노 대통령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잘 되게’ 할 수는 없어도,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안 되게’ 할 수는 있는 정도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게 바로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이 갖고 있는 ‘변수’다.
정치권 한 인사는 “지지율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아웃시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라며 “그러나 노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있는 손학규와 정동영 후보에 대해선 노 대통령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盧의 ‘입’
이미 노 대통령의 ‘입’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기간 중 “개성공단 등 여러 가지 경제협력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통합신당 경선과정에서 “통일부 장관 시절 허허벌판이었던 개성지역에 공단을 만들었다”고 강조하는 정동영 후보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인터넷 친노매체로 유명한 한 정치전문사이트에는 이해찬을 지지하고, 정동영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대선 역사’로 비춰볼 때 현직 대통령이 속한 정당에서 대통령의 뜻을 벗어난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켜세움으로써 DJ의 낙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북쪽의 훈훈한 바람이, 이른바 ‘北風(북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 집권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당초 남북간 정상회담은 이번 대선에서 주요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전반적이었으나 노 대통령이 국방장관 회담, 서해평화협력지대 등 예상보다 큰 ‘선물’을 들고 옴에 따라 대선정국의 ‘북풍’이 ‘태풍’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한나라당 독주의 대선판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모처럼 찾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범여권은 ‘역전’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큰 호재를 만났음에도, 경선파행으로 범여권은 침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신당경선은 불과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