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한 수원지방법원 고홍석 영장전담 판사는 19일 오후 "구속영장을 청구한 범죄사실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소명이 있었고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5시께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안양문예회관 앞 노상에서 귀가하던 이혜진.우예슬양을 꾀어서 불상의 방법으로 살해하고 이양 등의 시신을 흉기로 손괴해 수원 호매실IC 인근 야산과 시흥 오이도 개천변에 유기한 혐의(특가법상 미성년자 약취 유인 살인 및 사체 유기)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정씨는 당초 교통사고로 인해 피해자들이 사망했다는 진술을 번복해 "내 행위로 인해 아이들이 숨을 쉬지 않게 되었고 그 이후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수원지법 임민성 공보판사는 "실질심사에서 피의자가 말한 '행위'란 교통사고를 제외한 다른 행동을 의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정씨가 구속됨에 따라 정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집중 추궁할 예정이다. 또 경찰은 정씨가 지난 2005년 12월 전화방 도우미 A씨를 납치해 성폭행한 사실과 관련해 군포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안양경찰서 수사본부 관계자는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 수사가 마무리되면 각종 부녀자 실종사건이 정씨와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씨, 잇단 부녀자 실종사건도 범행?
즉 경기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정모씨(39)가 전화방 도우미 실종사건과 화성 부녀자 실종사건 용의선상에 올려질 전망이라는 것.
경기 군포경찰서 수사본부는 지난 2004년 7월 전화방 도우미 실종사건과 지난 2006년 12월14일부터 다음 해 1월7일까지 4차례 발생한 화성 부녀자 실종사건 등을 놓고 정씨를 용의선상에 올려 놓고 수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또 정씨가 지난 2005년 12월 전화방 도우미 A씨를 납치해 성폭행한 사실과 이에 앞서 지난 2003년 7월 실종된 전화방 도우미와 마지막 휴대폰 통화를 한 사람이 정씨라는 점 등에 주목하고 정씨가 다른 실종사건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집중 수사하기로 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 수사가 마무리되고 정씨가 구치소로 옮겨지면 각종 부녀자 실종사건이 정씨와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의자 집 화장실서 ‘제3의 혈흔’
실제 정모씨의 집 화장실에서 이혜진(11)·우예슬(9)양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혈흔 몇 점이 추가로 발견돼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찰은 정씨가 추가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는 “경찰이 정씨의 집 화장실에서 발견해 감식을 의뢰해 온 혈흔 중 제3의 인물로 추정되는 혈흔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정씨가 혜진·예슬양 사건 외에 경기도 서남부 지역에서 최근 몇 년 새 잇따라 발생한 부녀자 연쇄 실종 및 살해 사건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씨의 집 화장실에서 추가로 발견된 혈흔이 연쇄 실종 피해자들의 DNA와 일치할 경우 정씨의 추가 범행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또 정씨가 2004년 7월 군포시 금정역 먹자골목에서 실종된 전화방 도우미 A씨(당시 44세·여)와 마지막 통화를 해 긴급체포됐다가 물증이 없어 풀려난 사건도 집중 재조사하고 있다. 정씨가 2005년 12월 3일 금정역 먹자골목의 50대 전화방 여성 도우미를 집으로 불러 성폭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안양에 사는 K씨(54·여)는 “3년 전 정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구속된 정씨는 평범한 시민을 위장한 지능범?
사정이 이렇자 경기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 피의자 정모씨(39)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범행 동기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정씨가 범행 동기나 수법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속된 정씨는 어떤 인물인가.
정씨는 집주인 가족에게는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겸손하고 친절했지만 이웃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폐적인 은둔 생활을 하는 등 기묘한 이중생활을 해왔다.
2002년 안양시 안양8동의 지금 집으로 이사 온 뒤 대리운전사로 일했지만 집세를 2년 가까이 못 낼 만큼 생계가 어려웠다. 2년 전에는 알코올의존증을 앓던 동거녀를 잃기도 했다. 정씨 집주인 강모씨(43)는 "올 설에도 선물세트를 건넬 만큼 겉으로는 굉장히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었다"며 "하지만 우리한테는 웃으면서 인사도 잘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표정이 어두웠다"고 밝혔다.
정씨는 두 어린이를 살해하고 잔혹하게 토막내 버리는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웃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특별히 불안해하거나 이상한 낌새를 보이지 않았으며,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이웃들을 상대로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씨는 가까운 이웃들과도 왕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해왔다. 세들어 산 이래 단 한번도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기피했다. 강씨는 "한때 만났던 여자친구 외에 정씨가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택시기사 일을 그만두고 대리운전으로 업종을 바꿨다. 그러면서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하고 귀가, 오후 2∼3시에 일어나는 '올빼미' 생활을 해나갔다. 동네 슈퍼마켓 주인은 "항상 낮에 술을 사러 오는 남자가 있어 의아하게 여겨 '밤에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고 기억했다.
외부에 드러난 정씨가 '지킬 박사'였다면 혼자만의 공간에서 정씨는 '하이드'였을 것이다. 10평도 안되는 지하 셋방의 문이 닫히면 정씨는 사회에 대한 이유 없는 불만으로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극도의 공격성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선 정씨가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사회적 인격 장애)'이거나 소아기호증일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는 정상인이 갖는 죄의식이 전혀 없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며 자신의 불행을 타인·사회 탓으로 돌리는 '범죄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씨가 보여온 극도의 이중성 역시 '사이코패스'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이웃들은 정씨를 '말수가 없는 선량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힘없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 피의자다.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중에는 평소엔 선량한 보통시민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정씨가 검거 이후에도 '억울함'을 주장하는 모습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성이 일부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정씨에게 정신병력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소아기호증도 의심된다. 정씨의 집에 있던 컴퓨터에서는 포르노 동영상 700편이 발견됐고, 이 중에는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도 있었다. 정씨가 어린이에 성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는 직접적인 증거물은 되지 않는다. 정씨의 집에서는 공업용 본드도 발견됐다. 그가 본드를 마신 환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찰은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정씨가 자신의 집에서 시신을 토막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지난 16일부터 정밀 감식을 벌였는데도 결정적인 물증이 될 만한 혈흔이나 머리카락, 범행도구 등을 발견하지 못한 점 등으로 미뤄 정씨가 이곳에서 증거를 훼손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만큼 정씨는 두 초등생을 살해하고 유기하면서도 증거 인멸에 힘을 쏟고 행적을 짜맞추는 등 지능범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정씨는 긴급체포된 뒤에도 진술을 오락가락하면서도 범행장소와 시신 유기 현장 등을 거짓으로 진술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하지 않는 등 지능이 높았다.
정씨는 또 '교통사고를 내고 두 초등생이 죽어서 토막냈다',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냈다'고 진술하는 등 범행 동기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지능적인 거짓 진술을 반복했다.
지난 2004년 군포 전화방 도우미 실종사건 때 용의선상에 올라 수사를 받았던 정씨는 당시 실종자와 마지막으로 휴대폰 통화를 했었다. 경찰은 당시 정씨의 행적이 진술과 일치했고 휴대폰에 근거까지 가지고 있어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정씨를 풀어줬다.
정씨는 지난 2005년에도 전화방 도우미인 50대 여성을 납치한 뒤 성폭행해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랐으나 피해자의 수사 협조 거부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씨가 지능범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군포 부녀자 실종 사건 등 경기 서남부권에서 발생했던 실종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지 추궁하고 있다.
경찰, 시흥 군자천 수색 예슬양 시신 못찾아
한편 안양경찰서 수사본부는 19일 어제(18일)에 이어 우예슬양(8)의 얼굴 부위 등 나머지 시신을 찾기 위해 시흥시 시화공단 내 군자천에 대해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전·의경 2개 중대를 비롯 한국수자원공사, 소방서, 자원봉사단체 등 300여명을 동원해 군자8교에서 3교 사이 지점에 대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우양의 나머지 시신을 찾는데는 실패했다.
앞서 경찰은 18일 오후 4시43분께 군자8교∼6교 사이 지점에서 수색작업을 벌여 예슬양의 토막난 양팔과 양다리, 몸통 등 얼굴 부위와 같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발견했었다.
경찰 관계자는 “날이 저물어 오늘 수색 작업은 중단한 상태며 내일 아침 일찍 수색 작업을 다시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리=매일일보 인터넷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