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민 인모스트투자자문 대표] 성서에 보면 먼 길을 떠나는 주인이 종들을 불러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5달란드, 2달란트, 1달란트씩 자신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기고 떠난다. 주인이 돌아와 종들을 불러 놓고 맡긴 재산을 물었다. 5달란트, 2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열심히 장사하고 이문을 남겨 각각 받은 돈의 2배를 불려 주인에게 바쳤다.
1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잃을까 두려워 땅에 묻어뒀다가 주인에게로 다시 가져온다. 받은 돈을 땅에 묻은 종은 악하고 게으르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받은 돈을 성실히 운영한 종들은 더 많은 일을 얻고 주인의 기쁨이 됐다.
평생직장, 장인정신으로 대변되는 옛말과 다르게 현대인에게 직장은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워라벨로 불리는 일과 삶의 적절한 조화는 이제 유별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 됐다. 하지만 현재 삶의 조화가 경제생활을 멈추는 미래 어느 날의 삶에도 조화로울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운 지표가 나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달 초 금융감독원은 대한민국 퇴직연금 현황을 발표했다. 2005년에 도입돼 대한민국 공적연금인 국민연금 다음으로 큰 규모를 가진 퇴직연금의 지난 수익율이 연환산 1%대라는 충격적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해야 할 이야기는 이 지면이 모자랄 것 같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찾는다면 필자는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와 확정기여형(DC), 개인형(IRP)로 나뉜다. 이 중 DB형은 퇴직연금 가입 기업이 주체가 돼 운영하는 만큼 기업이 해당 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퇴직금 운영에 수익이 발생해도 근로자에게 그 수익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퇴직금 지급에 들어가는 기업의 비용이 줄어들 뿐이다. 반면 퇴직금 운영에 손실이 발생한다면 기업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지급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퇴직연금 가입 형태의 64%에 달하는 DB형의 대부분은 원금보장형 상품이 주된 형태를 이룬다.
DC, IRP는 가입자 개인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퇴직금을 제3의 금융기관을 통해 운영하고 이에 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형태다. 하지만 대부분 가입자는 장기간 진행할 투자에 적극적으로 다양한 투자를 시도하기보다는 매년 일정금액을 쌓아두는 형태로만 운영하고 있다. 실상이 이러하니 퇴직연금제도로 운영되는 자금은 대부분이 원금보장형이거나 그에 따르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퇴직연금제도가 과거 퇴직금제도와 구분돼 시행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기업이 퇴직금을 사내 계정에 유보금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것을 별도의 금융기관에 위탁하게 함으로 퇴직금을 안전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취지에 있다. 둘째로는 장기간 운용이 필요한 연금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금융기관의 상품에 투자할 기회를 늘리고, 이를 통해 물가 상승율을 웃도는 실질적인 퇴직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의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퇴직금을 어떤 방법을 통해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그 지침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해외의 경우 퇴직연금 자산을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퇴직연금을 전문가에게 맡겨 운영하는 별도의 자문서비스 활용도 이뤄진다. 은퇴자, 은퇴 예정자들이 스스로 투자클럽이나 소모임등을 구성해 함께 투자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투자 활동을 하기도 한다.
주인에게 일정 소득을 부여받은 종들은 각각 자기의 능력으로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보였다. 반면 본인의 무지와 두려움으로 땅에 묻어둔 종은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책망받고 하던 일에서도 쫓겨난 참혹한 결과를 맛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게으른 종과 같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일정의 소득을 열심히 일한 노력의 대가로 받아 땅에 묻어 두는 식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게으르지 않다. 전 세계에서 일하는 시간과, 일하는 속도와, 일하는 질에 있어 어느 나라 못지않은 나라다. 다만 그 노력의 일부를 멋진 미래를 위해 운영하는 지혜와 노력이 더해진다면 지금의 워라밸이 은퇴 후에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