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는 갑작스런 태도 변화 없을 듯…"단계적으로 접근해야"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역사적 엔저(엔화가치 약세)가 엔고로 바뀌면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높은 국내 석유・전자・자동차 업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일 무역관계에선 석유・전자・기계・철강 등의 교류가 많아 한일 관계 개선 시 이들 분야의 경협 확대가 기대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아베노믹스는 극도의 금융완화로 금리를 내려 소비자나 기업의 대출 및 소비가 용이하게 돈을 쏟은 정책이다. 이런 기조가 기시다 정권에서 바뀌면 엔화 방향성도 선회해 국내 경제에도 밀접한 영향을 줄 것이 예측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일본과의 수출경합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가장 높은 수치는 석유제품에서 나타났다. 이어 전기・전자제품, 자동차 및 부품 순으로 높았다. 그밖에 생활용품, 플라스틱・고무제품, 철강, 기계류, 가전제품, 반도체, 선박, 의료・정밀광학기기는 비슷했다. 따라서 엔저가 엔고로 바뀌면 비교적 수출경합도가 높은 석유제품, 전자제품, 자동차 순으로 일본 대비 가격경쟁력이 생긴다.
무역협회는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은 완화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미국시장에선 반도체 수출경합도가 가장 많이 하락했고 중국시장에선 석유제품이 비슷한 추이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협회는 한국과 일본의 수출구조가 차별화되고 한국제품의 경쟁력이 제고된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현재 엔화가 국내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란 지적이다.
그럼에도 아세안시장에선 최근 6년간 반도체, 전기・전자제품의 수출경합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만의 TSMC가 일본 소니와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면서 다수 로컬 기업이 투자에 참여하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반도체 분야의 경합도가 상승할 것도 점쳐진다. TSMC와 소니그룹 합작 신공장은 2024년 말에 가동될 예정으로 일본 규슈 지방의 반도체 생산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파운드리 3나노 공정 양산에 진입해 TSMC와 세기의 결전을 벌이는 중이다. TSMC가 일본과 힘을 합치는 구도가 파운드리 선두경쟁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전자부품 분야에선 삼성전기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시장에서 일본 무라타와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MLCC는 기존 IT제품을 벗어나 고부가가치 자동차 영역으로 확장하며 시장 파이가 급성장하는 추세다. 양국의 수출액이 동시에 늘어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은 민감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도 현대차가 오는 7월부터 아이오닉5의 일본 현지 판매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이는 현대차가 13년 만에 일본 승용차 시장에 재진출하는 것으로, 자동차 분야의 경합도 역시 상승할 것이 예견된다.
대일 무역수지는 올들어 5월까지 누적 기준 석유류의 흑자 규모가 컸다. 석유류는 대일본 수출 금액도 가장 컸다. 이어 전자·기계·철강 순으로 수출금액이 컸지만 무역수지는 모두 적자였다. 이들 분야의 수출입 교류가 활발한 것을 감안하면 한일 수출제한조치 이후 경색된 경협이 회복될 시 수혜를 입을 것도 예측 가능하다.
윤석열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한일정책 협의단이 일본을 방문해 관계 개선에 나섰으며 양국 사이 첫 번째 FTA인 RCEP도 올해 발효됐다. 여기에 이전 아베 정권에 비해서 온건보수 성향인 기시다 정권이 최근 참의원 선거 대승으로 향후 3년간 유지된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시다 총리가 정권장악력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집권을 할 경우 한일관계 개선도 기대해 볼만하다”며 “다만, 기시다 내각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에 대한 현재의 강경 노선을 급격히 선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