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대응여력 부족으로 경영난까지 겪어
[매일일보 김혜나 기자] 최근 중소기업계의 숙원인 납품단가 연동제가 통과됐지만, 새로운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중소기업 기술 유출 피해는 핵심 인력이 경쟁 중소기업으로 이직 또는 창업, 대기업 이직, 거래 전 기술유용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생하고 있다. 보안 인력 및 정보 부족, 교육 기회 부재 등으로 기술보호 역량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비밀유지서약 체결 비율이 낮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기술 비밀유지서약 체결하는 중소기업은 10곳 중 6곳으로,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임직원이 90% 이상 비밀유지서약서를 체결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중기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중소기업의 1.7%가 기술 유출·탈취를 경험했고, 평균 피해 금액은 5억8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한 기술침해 피해액은 189억4000만원에 이른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발생한 피해액은 2827억원으로 집계됐다.
국가정보원의 조사 결과 최근 5년간 국가 핵심 산업인 반도체·자동차·원자력 등의 분야에서 발생한 89건의 기술유출 사례 역시 59%가 중소기업의 피해 사례로 나타났다.
또 2018년부터 작년까지 지난 4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당사자계 특허 심판 패소율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특허소송 시 침해 및 손해액에 대한 증거 대부분을 침해자인 대기업이 보유해 증거 수집의 어려움 등으로 침해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은 기술탈취 관련 소송 과정에서도 인력과 자금난을 겪는다. 실제 2020년도 중기부가 진행한 중소기업기술보호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유출 피해 발생 후에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중소기업이 42.9%에 달한다. 입증여력 부족 등으로 사후 조치를 포기하는 사례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중소기업계는 이같은 입증의 어려움과 비용, 보수적인 법원 판결 등으로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중기부는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12차 상생조정위원회 회의에서 기술보호 정책보험의 보장 범위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5개 안건을 심의했다. 지난 3월 시행된 기술보호 정책보험은 중소기업이 자사 보유기술에 대해 예상치 못한 분쟁 발생 시 소요되는 법률 비용을 보험금으로 지급해주는 제도다.
기존 기술보호 정책보험은 보호대상이 특허와 영업비밀까지였다. 하지만 이를 디자인과 실용신안까지 넓히기로 했다. 국내 법원까지였던 보장 지역도 해외 법원까지 확대된다.
중기부는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소프트웨어 산업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 협업 현황을 공유하고, 공정한 거래 환경 조성 계획도 논의했다. 업계에선 대표적인 불공정거래 관행으로 과업 추가 및 변경에 대한 대가 미지급, 부당한 하자보수 요구 등이 꼽히는데 이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20일 기존에 한시 조직으로 운영되던 ‘기술유용감시팀’을 ‘기술유용감시과’로 확대 개편하고, 인력을 2명 증원하는 내용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오는 27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기술유용감시과 신설을 통해 향후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대한 법 집행을 더욱 강화하겠다”며 “중소기업이 혁신적 기술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기술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도록 뒷받침 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하청업체의 기술자료를 보호하기 위해 기술자료 심사지침을 마련한 바 있다. 기술자료로 보호되기 위한 관리수준을 ‘합리적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에서 ‘비밀로 관리되는’으로 완화하며 보호되는 기술자료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특히 소기업의 경우 기술자료를 비밀로 관리할 여력이 부족해 더욱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원청업체가 기술자료 요구에 앞서 하청업체에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기술자료 요구서’의 제공 시기도 ‘요구 시’로 규정했다.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 협의 하에 수급사업자에게 서면을 교부하도록 했으나, 서면 제공은 정해진 시기가 없다고 판단해 수년 뒤 사후 발급하는 사례가 발생해 이를 방지하고자 마련한 방침이다.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 기준도 보완했다. 기술자료 요구서와 비밀유지계약의 중복사항을 정리하는 부분도 심사지침에 담았다.
한편, 특허청도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강화를 위해 영업비밀 보호 지원사업을 개선하기로 했다. 영업비밀·기술유출 피해 기업의 초동대응 및 피해구제 지원도 강화한다. 경찰청은 경제안보 수사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경찰청 안에는 경제안보수사TF를, 각 시·도 경찰청에는 산업기술보호수사대를 신설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