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보라 기자] 은행 위기로 기업 혁신이 위축될 때 벤처캐피털이 이를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은행 위기와 벤처캐피털이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BOK 경제연구)에 따르면 은행 신용대출이 어려워지는 은행 위기 시에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이 위축된다. 은행 위기는 한 국가의 은행 부문이 많은 수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경험하고, 갑작스럽고 심각한 수준의 은행 계좌 인출이 발생하며 기업과 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이 급증하는 시기다. 우리나라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 은행 위기를 겪었다.
성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과장은 은행 위기 시 벤처캐피털이 은행 금융을 대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1980∼2012년도 31개국 제조업체의 혁신 활동을 산업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패널 데이터를 기초로 은행 위기 자료, 벤처캐피털 자료를 결합해 실증분석했다.
그 결과 외부금융에 의존적인 산업일수록 은행 위기 시 혁신 활동이 위축됐다. 구체적으로 은행 위기 시 각 산업의 외부금융 의존도가 한 단위 증가할 때마다 특허 출원 수와 인용 수가 평균적으로 각각 35.9%, 11.5% 감소했다. 또한 특허 독창성(다양한 분야를 인용할수록 높음)과 일반성(다양한 분야로부터 인용 받을수록 높음) 점수도 각각 17.6%, 26.6% 감소했다.
은행 위기의 이러한 부정적 영향은 벤처캐피털이 발달한 곳일수록 완화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 국가의 벤처캐피털 지수는 7점 만점에 평균 3.786이었는데, 이보다 1.458점 이상 높을 경우 은행 위기의 특허 출원 수에 대한 부정적 충격이 완전히 상쇄됐다. 인용 수는 평균보다 0.848점, 독창성은 평균보다 0.963점, 일반성은 평균보다 1.701점 이상 높을 때 은행 위기 충격이 상쇄됐다. 성 과장은 “기술 혁신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중요하고 특히 은행 신용경색, 은행 위기시 벤처캐피털이 대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성 과장에 따르면 이번 연구에서 1980∼2012년 사이 특허 기록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의 특허 출원 수는 조사 대상 중 8위였지만, 2020년 기준으로는 3∼4위였다. 벤처캐피탈 지수 역시 연구 기간에는 평균 이하였으나, 2020년에는 5위로 올라섰다. 성 과장은 “연구 대상 기간보다 최근에 특허 수와 벤처캐피털 지수 모두 올랐기 때문에, 한국에서 은행 위기가 발생하면 과거보다는 벤처캐피털이 대안적 역할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