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1919년 3월 1일, 마을과 장터에는 격문이 붙고 독립선언서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
무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만세소리와 함께 태극기가 휘날렸다.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운동은 평양, 의주, 원산 등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당시 시위참가인원은 최소 80만~최대 103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당시 조선의 인구가 20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한민족 사상 최대 항일 민중운동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1운동의 경험과 기억은 일제 강점기 동안 치열했던 항일 독립투쟁의 정신적 토대가 되어 그날 이후 수많은 독립군이 매일같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고 일제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일제의 탄압이 가혹했지만 우리 민족의 기상은 결코 꺾이지 않았고, 이날의 희생과 애국정신은 임시정부 수립과 조국 광복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나라 보훈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부터 시작이기에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는 당연하다.
국가보훈처는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와 손자녀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유공자 명패를 자택에 달아드리고 있다.
가까운 이웃에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있다는 사실은 지역사회에 큰 자긍심을 심어주리라 생각된다.
올해 보훈처는 새롭게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하여 독립운동 공적에 비해 낮은 훈격으로 서훈된 분들에 대해 알맞은 훈격을 찾아드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미스터 선샤인에서 유진 초이 역의 실존 인물이었던 황기환 지사와 미주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문양목 지사 등 국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할 예정이며, 멸실된 최재형 선생 묘역도 복원하여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 품격 있는 예우를 실현하고자 한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자유와 독립을 향한 외침은 평범한 백성들을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 태어나게 했고 정의와 평화, 인도주의를 향한 외침은 식민지 백성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함성이 되었다.
그 어느 계절보다 뜨거웠을 1919년의 봄, 역경을 헤치고 독립이라는 역사를 안겨준 순국선열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