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직장폭력, 군대 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등 각종 폭력이 이제는 한국 사회가 운명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다양한 폭력 범죄는 K드라마 소재로 이용되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되고 있다. K폭력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있다. 군대 폭력을 사실적으로 다룬 드라마 'D.P.',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언어폭력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미생',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학폭 드라마 '더 글로리', 촉법소년 제도를 악용하는 소년 범죄자들을 썸뜩하게 그린 드라마 '촉법소년', 가벼운 처벌밖에 받지 않은 범죄자들에 사사로운 복수를 하는 공상 드라마 '모범택시' 등 셀 수 없이 많다. K폭력을 주제로 한 K드라마들이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공감을 사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정순신 사태'는 여러모로 K드라마 '더 글로리'를 닮았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동급생에게 "제주에서 온 돼지" 등 언어폭력을 가한 것이나 피해자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드라마 밖의 현실은 더 드라마틱하다. 학폭 징계를 무력화하기 위해 '소송전'이라는 아빠 찬스를 꺼낸 부모까지 등장하니 말이다. 2018년 당시 검사였던 정 변호사는 아들이 학교폭력대 책심의위원회에서 강제 전학 처분을 받자 재심과 행정소송, 전학 조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수단을 총동원했다. 모두 패소했다. 이례적으로 대법원 상고심까지 이어지는 행정소송을 벌인 목적은 오로지 '시간 끌기'. '법 기술자' 부모를 둔 아들은 결국 학벌의 정점인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학폭과 부모 찬스라는 민감한 2개의 코드가 결합하면서 공분은 어느 때보다 컸다.
학폭 처리 절차는 통상적으로 이렇다. 신고가 접수되면 학교 내 전담 기구에서 자체 해결에 나서고, 해결이 안 될 경우 교육청 학폭위가 심의를 거쳐 조치를 내린다. 그 처분에 불복할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이 행정소송과 행정심판이다. 문제는 학교 담장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채 법정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학폭이란 '주홍 글씨'가 생활기록부에 새겨지면 대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보니 재력 있는 부모들이 소송을 불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폭 관련 법률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상업화되는 모양새다. '이혼 전문'처럼 '학폭 전문' 변호사가 등장했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처분이 달라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칙이 학폭에도 적용된다니 씁쓸하다. 오죽하면 정 변호사 아들 출신고 교장이 "이미 학폭은 법률가들의 시장이 됐다는 얘기가 많지 않나"라고 개탄했다.
검색창에 '학폭 전문', '학폭 변호사'로 검색하면 넘쳐나는 광고에 깜짝 놀랄 것이다. 가해 학생이 받은 징계를 취소·지연시켜줬다는 광고도 넘쳐난다
'정순신 사태'로 여론이 들끓자 교육부는 학폭 근절대책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의문이다. 교육부가 다양성 교육, 입시제도 변경 등 뭔가를 하면 오히려 사교육비는 증가했다. 이번에도 학폭 근절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교육부 학폭 전력을 대입 정시전형에도 반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학폭 가해자가 멀쩡히 대학에 들어가게 놔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대학 입학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보다 큰 낙인찍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폭을 대입과 연계하면 가해자들의 소송은 더 빗발치게 될 가능성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정순신 사태'로 가장 득을 본 것은 '학폭 변호사'일 것이다. 학부모들은 교육부의 대책을 기대하기보다는 학폭 대비 적금을 준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