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근로자가 본인의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 조절이 가능한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가 전통적인 일반 근무 형태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현재의 경직된 일반 근무 형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유연근로제 확대는 노동생산성 제고는 물론 저출생 해법과도 연관이 크다.
지난 1월 28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도 한국 가구와 개인의 경제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제25차 한국노동패널의 코로나19 부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직장인 1만 42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시차출퇴근제, ▷선택근무제, ▷원격근무제, ▷재택근무제 등 유연근무제를 활용해본 임금 근로자를 대상으로 각각 제도별 생각을 물은 결과 시차출퇴근제, 선택근무제, 원격근무제, 재택근무제 순으로 생산성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시차출퇴근제는 근로자의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조절해 유연한 시간 활용이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고, 선택근무제는 1개월의 주 평균 근로 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1주 또는 1일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제도이며, 원격근무제는 공유 오피스나 카페 등에서 PC나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근무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조사 결과 첫 번째, ‘시차출퇴근제’ 경험자의 53.1%는 이 제도가 일반 근무 형태보다 “더 생산적”이라고 답했다. “차이가 없다”라는 응답은 40.8%였으며, “생산적이지 않다.”라는 응답은 6.1%에 불과했다. 두 번째, “선택근무제”는 경험자의 41.8%가 일반 형태보다 “더 생산적”이라고 답했고, “차이가 없다”라는 응답은 37.2%였으며, “생산적이지 않다”라는 의견은 20.9%이었다. 세 번째, ‘원격근무제’는 34.7%가 일반 형태보다 “더 생산적”이라고 답했고, “차이가 없다”라는 응답은 45.7%였으며 “생산적이지 않다”라는 의견은 19.6%였다. 네 번째, 재택근무제는 “생산성 차이가 없다”라는 응답이 45.2%였다. 다만 재택근무제만 4가지 제도 중 유일하게 일반 근무 대비 “생산적이지 않다”라는 의견이 29.1%로 “더 생산적”이라는 의견 25.7%보다 많았다.
일반적으로 유연근로제는 근로자들의 일·생활 균형을 향상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제도로 알려져 있는데, 생산성 제고에 있어서도 대체로 일반 근무 형태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근로자들은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활용의 기회는 아직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다니는 직장에서 코로나19로 최근 1년간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는 응답 3.2%와 원래 유연근무제가 있었다는 응답 5.6%를 합쳐봐야 겨우 8.8%만이 유연근로제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유연근무제에 대한 근로자들의 평가가 담긴 이번 ‘2022년도 한국 가구와 개인의 경제활동’ 조사 결과가 포스트 코로나19 시기에 보다 생산적이면서 일·생활 균형에 도움이 되는 근로제도 마련 시에 기초자료로 사용이 가능할 만큼 의미 있는 자료임은 분명해 보인다.
일하는 방식만을 개선해 생산성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인 ‘기적의 회사’가 있어 주목받는 일본 사례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의 사례로 2012년만 해도 이토추상사 출산율은 0.60명으로 일본 평균 합계출산율 1.41명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2021년 일본 기업 평균은 1.30명으로 줄었는데 이토추상사 여성 직원 1명당 출산율은 1.97명으로 9년 새 출산율이 3배까지 올라 거의 2명을 낳는 셈이니 ‘이토추의 기적’으로 불릴 만하다. 출산율뿐만 아니라 2010년 대비 2021년 노동생산성(직원 1명당 순이익)은 무려 5.2배로 더 크게 올랐다고 한다.
‘이토추상사’는 2013년부터 오전 5∼8시에 출근해 오후 3시부터 퇴근하는 ‘아침형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해외 무역을 하는 종합상사 특성상 야근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도 원칙적으로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금지했다. 그 대신 오전 5~8시 근무를 심야 근무로 인정해 일반 야근 수당의 1.5배를 지급하며 새벽 근무를 장려했다. 대부분의 야근은 상사의 눈치를 보며 남아 있는 불필요한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침형 유연근무를 선택한 직원은 이르면 오후 3시부터 퇴근할 수 있다. 팀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근무는 집중 근무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에 처리한다. 또한 주 2회 재택근무제도 실시한다. 아이를 키우는 직원이라면 오전 5시에 출근했다가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과감하게 일하는 방식을 바꿔 아이를 낳고 부모가 직접 키울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자 출산율이 저절로 올라간 것이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29일 ‘기업내 자율적 유연근무 확산 적극 지원’ 제하의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부터 육아기 노동자를 대상으로 시차출퇴근제도를 도입한 중소·중견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유연근무제는 근로자의 출퇴근 부담을 줄여 육아기 근로자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고 일·생활 균형을 통해 근로자의 일 만족도를 제고할 뿐만 아니라, 우수 인재 유치 등 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 현장에서는 제도 도입 방법을 잘 모르거나 체계적인 준비 없이 도입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는 사례가 많았다. 따라서 고용노동부는 유연근무가 현장에 안착하여, 일・육아 병행 등 저출산 대책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올해에도 지원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장려금은 1년에 최대 240만 원까지 지급한다. 시차출퇴근제도를 한 달에 6∼11일 활용하면 10만 원씩, 한 달에 12일 이상 쓰면 20만 원씩 지급한다. 기존에 장려금을 지급하던 재택·원격·선택 근무의 경우에도 육아기 노동자에게 적용될 경우 10만 원씩 추가 지원한다. 이에 따라 월 최대 지원 규모가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상향됐다. 이외에도 유연근무를 활용하면서 근태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장에 대한 지원이 투자 비용의 50%에서 70%로 확대되고, 재택·원격근무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컨설팅도 ‘유연근무 종합 컨설팅’으로 개편된다. 컨설팅 대상 사업장에 인사․노무 컨설턴트 등을 투입하여 기업진단, 인사 노무제도 설계, 필요시 IT 인프라 설계, 시범운영 등 유연근무 활용을 위한 전문 컨설팅을 제공한다. 바람직한 일로 환영한다.
그러나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 응답자의 겨우 8.8%만이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음은 아직도 제도 정착에 있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늦게 출근하는 엄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빨리 퇴근한 아빠가 아이를 데려오는 형태가 왜 우리나라에선 거의 불가능한지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많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하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출생율 제고를 위해 총력전을 벌려야 한다는 의미다. 출산과 육아를 가로막는 제반 문제가 해소되면 합계출산율이 1.8명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 출산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해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감소 추세를 낮추자는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1일 발표한 ‘2022년 신혼부부 통계’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맞벌이와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유자녀 비중이 달랐다. 맞벌이 부부의 유자녀 비중은 49.8%로 외벌이 부부 59.4%보다 무려 9.6%포인트 낮았고, 무주택 부부의 유자녀 비중은 49.5%로 주택이 있는 부부의 유자녀 비중 59.6%에 비해 10.1%포인트나 현저히 낮았다. 이는 집이 없거나 맞벌이하는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지 않는 비중이 두드러지게 높은 것이다. 최소한 맞벌이 부부의 필요를 적극 수용해서 유연근무제로 근무 형태만 바꿔도 저출생 해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결국 생산성까지 높여 기업에도 이익이 됨을 이번 조사 결과는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유연근무제를 일반화시켜 노동생산성 제고 및 출산율 반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