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부족으로 촉발된 사태… “처벌, 현실적으로 불가능”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정부가 의료인들의 현장 미복귀 시 징역 및 면허 취소 등 법적 처벌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다만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실제로 이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경찰 등은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료현장을 벗어난 의사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책을 꺼내들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19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에서 "이 시간부로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같은 날 "명백한 법 위반이 있고 경찰 출석에 불응하는 의료인에게는 체포영장, 주동자는 검찰과 협의를 통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정부는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2명에게 ‘의사 면허 자격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집단행동 교사금지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행정처분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태도에도 의료계 반응은 요지부동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의 강경책에 대해 “비대위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적법한 수단과 방법, 의대생, 전공의, 의대 교수, 봉직 의사, 개원 의사 모든 회원의 역량을 결집해 투쟁에 나설 것”이라 강조했다. 업무복귀 명령 불복시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정부의 법적 대응에 대해선 “의료법상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정부 대응에 의료계가 강경하게 나올 수 있는 배경엔, 실제 의료 현장에선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의대 증원에 대한 근거는 지역 필수의료에 종사할 의료인 부족이다. 대표적으로,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과목인 뇌졸중 분야의 전문의 숫자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최소 인력 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한뇌졸중협회 측은 “수련 병원 74곳에 전공의가 86명 정도 있는데, 각 연차 당 최소 2명 즉, 현재의 약 2배 수준인 160명으로는 증원돼야 안정적으로 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의료인이 처벌을 받아 더 이상 진료를 하지 못할 경우, 필수의료에 투입될 인력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모순이 나온다. 실제 이번에 의협 수뇌부 2명이 면허정지 처분을 받게 된 사유는 '사직을 조장했다'는 이유다. 정작 지난주부터 사직서를 던져 온 전공의들에겐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상태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이 집단 진료 거부를 행사할 시, 정부는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이에 불복할 경우 1년 이하의 자격 정지 및 3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최근 새롭게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은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환자들이 만족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 가능한 의사는 전문의 자격 보유자다. 전문의 한 명을 양성하는데는 보통 10년이 걸린다. 2025년도부터 의대에 증원되는 2000명도 당장 핵심 전력이 될 수 없다. 현재까지 대형병원 전공의 700여명 가량이 사직서를 냈는데, 현재 이들의 공백을 메울 대체 인력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전국 40개 의대·의전원의 학생대표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오는 20일을 기점으로 동맹휴학 및 이에 준하는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해, 의대생마저도 정부에 등을 돌린 상태다. 이런 환경에서 섣불리 처벌을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국민 여론 대부분이 의료계에 부정적인 형편이지만, 의료대란이 장기화 될 경우 국민이 정부에게 조속한 합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의대증원 문제로 의료계가 파업에 나선 바 있다. 당시에도 환자들의 수술이 미뤄지거나 취소돼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문재인 정부는 증원 계획을 철회했다.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한 의료대란을 ‘지역 거점 병원 활성화’와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 등으로 해소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집단행동 기간에도 필요시 병원급을 포함한 모든 종별 의료기관에서 대상 환자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전, 인천, 강원, 제주, 전북 등 지역 거점 의료기관에서도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지역 사회의 의료 공백은 더욱 커지게 됐다. 또 의료대란의 핵심은 고난도 외과 수술 일정이 연기되면서 빚어진 만큼, 수술이 필요한 환자 입장에선 비대면 진료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단 우려가 나온다.
한 공공의료원 의료인은 “이번 사태는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동향이 관건이 될 것이다. 지금은 의사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갈등을 수습하지 못한 정부에게 화살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