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해 안정시켜야 vs 과도한 시장 개입 안돼
매일일보 = 이선민 기자 | 국내 식료품‧음료 물가 상승률이 국제적으로도 상위권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고물가 원인 중 하나로 독과점 시장이 지목됐다.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2월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7%에 육박한다. OECD 평균 식품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9%까지 오른 후 올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이 잦아들면서 5%대로 빠르게 정상화 된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국내 먹거리 물가는 과일 값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지난달 사과 물가는 88.2% 올라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농산물유통 종합정보시스템의 4월 셋째주 사과 가격은 1㎏에 6020원으로 지난 같은 시기보다 3배 가까이 상승했다.
올해 사과 가격이 오른 일차적 요인은 이상 기후지만, 독과점 형태의 농수산물 유통 과정이 최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산물은 공영도매시장에 농산물이 들어오면 도매법인이 진행하는 경매로 가격을 정하도록 되어있는데, 과일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끼리 암묵적인 담합이 가능한 구조라 경매를 진행하는 청과회사들이 수십년간 독과점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조사한 2022년 11월 유통비용 명세표에 따르면 생산자가 2200원에 판매한 사과가 산지 공판장, 도매시장, 대형 유통업체, 소매업체 등을 지나 소비자에게는 6000원에 팔린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도매시장 등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검토에 나섰다.
이 같은 독과점 기업의 담합 의혹은 농수산물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라면, 제빵, 주류 등 독과점 시장으로 유지되는 먹거리는 가격을 올릴때마다 담합 의혹이 제기된다. 국내 빵 물가는 1년 전보다 9.55% 상승했고, 주류 가격 역시 출고가가 평균 6.9% 인상됐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지난달 공정위는 물가 안정을 위해 국내 제빵산업과 주류산업 실태조사를 위한 연구용역을 각각 발주했다. 주요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 유통 구조 등을 파악하는 것이 용역의 핵심이다. 정부는 산업의 경쟁 상황을 파악하고, 담합 등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검토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식품 시장 개입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상위 소수 업체가 독과점한 시장 구조에서는 가격 인상, 품질 저하, 소비자 선택권 축소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입장도 있지만,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다.
현 정부는 초기부터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지난 22대 총선에서 야권이 크게 승리했고, 고물가가 초장기화하면서 물가 안정을 위해 독과점 문제에 대한 개입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경영전략을 연구해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것에 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하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식품회사는 영업이익률이 극도로 낮은 분야 중 하나다. 중장기적으로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한다”고 전했다. 고물가 속에 중장기적인 안정화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단순히 가격 인하 압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측은 독과점 문제와 관련해 “가격 인상을 두고 공정위가 직접 개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 등 시장 원리에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면서도 “가격 상승이 담합으로 인한 것이라면 면밀히 살펴서 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