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서효문 기자 | ‘믿을맨’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만 없이 묵묵하게 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붙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는 믿을맨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다. 하지만 믿을맨의 입장에서 과연 타자의 시선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여러 사람에 신뢰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뿌듯함을 느끼겠지만 큰 부담감도 동시에 느낄 것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믿을맨의 부담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곳은 ‘은행’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연체율 급등,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해 등에 대한 구원투수 역할을 전부 은행이 도맡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상생금융’ 역시 은행들이 주도적으로 실시 중이다.
조금 가혹하다는 느낌도 든다. 여타 금융권에서 발생했던 사건 역시 수습은 은행에 떠맡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5월 발표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 방안’은 이런 생각에 확신을 들게 한다.
해당 방안의 골자는 은행의 부동산 PF 사업장 신규 자금 투입이다. 사업성이 높은 PF 사업장에 은행이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 금융당국은 해당 은행에 대출한도 확대, 충당금 적립 부담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이를 토대로 해당 사업장의 경·공매 활성화를 꾀한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부동산 PF 사업장에 신규 자금만을 투입하면 역할이 끝나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아니다’다. 결국 경·공매에 나온 PF 사업장 인수까지 은행들이 떠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마디로 금융당국이 지탱하고 있었던 부동산 PF ‘인공호흡기’를 은행에 떠넘겨 ‘간병’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에서도 이런 점을 우려해 신규 자금 투입이 골자인 해당 방안에 대해 냉소적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부동산 업황 회복이 사실상 지지부진한 가운데 부동산 PF 관련 투자는 사실상 큰 리스크가 크다”고 말한다. 즉, 5월에 발표될 PF 정상화 방안은 은행에 해당 사업장의 위험을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우회적으로 토로하는 상황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 은행들이 해당 방안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홍콩 ELS 사태만 봐도 그렇다. 은행들은 올해 1분기 홍콩 ELS 손해 자율배상을 시작했다. 다행히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할 만큼 선방했지만, 여전히 투자 상품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 있다. 배상하지 않아도 되는 손해를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지로 은행들이 수행했다는 시선으로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물론 금융당국이 은행에 믿을맨을 주문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7%에 육박하는 연체율을 가지고 있는 저축은행, 홍콩 ELS 사태에 허덕이는 증권사 등 위험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곳이 은행·보험 외에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금융권의 모든 문제를 은행에 떠넘기는 현재 방식은 제고가 필요하다. 지난 4.10 총선이 끝났을 때 은행권 한 관계자가 필자에게 해준 말은 이런 생각에 더 힘을 싣게 한다.
당시 그 인사는 “4.10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났으니 이제 금융당국이 은행에 상생금융, 홍콩 ELS, 부동산 PF 정상화 등을 더 강력하게 주문할 것 같다”며 탄식했다. 이 말 그대로 현재 금융권의 ‘믿을맨’인 은행들의 부담감과 압박감은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