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 직원 300명가량의 작은 부처다. 1년 예산은 500억원 남짓이다. 그러나 권한 자체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방통위는 방송·통신 분야 정책을 추진한다. 방송·통신 사업 분야의 시장질서 준수 및 이용자 보호를 앞세워 즉각적인 조사에 착수, 사업자들을 제재할 수 있고 사업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지상파 3사를 포함한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기타 방송사업자들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방통위원장이 마음 굳게 먹으면 방송사 몇 개는 문 닫게 만들 수 있다. 통신업체들의 과도한 휴대폰 지원금, 판매점 부당지원도 표적이다. 방통위 조사팀이 그 현장에 직접 들이닥친다.
2023년 국내 방송시장 전체 매출액은 19조원이다. 이동통신과 인터넷망, IPTV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통신 3사 매출만 58조원이다. 통신망을 이용한 부가통신사업자들의 총매출은 무려 328조원에 달한다. 포털과 금융, 전자상거래 등 각종 플랫폼, OTT, 콘텐츠 사업자 등 모바일 및 인터넷 생태계 전체에 광범한 영향을 끼치는 기관이 바로 방통위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다. 방통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상임위원이 주요 사안을 의결한다. 위원회 형태로 운영되는 이유는 국민여론에 큰 영향을 끼치는 방송 분야 정책의 공정성 때문이다. 최소한의 여야 합의 형태를 띠라는 취지다.
현 정부 들어 그 합의제 운영 형태가 완전히 깨졌다. KBS, MBC 경영진을 결정하는 이사회 구성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의 임기 종료 후 대통령실은 여야 국회 추천 인사들을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최민희 국회 과기방통위원장 본인이 원래 상임위원 후보다. 무기한 임명 보류 끝에 결국 총선에서 당선되고 과기방통위로 들어온 기구하면서도 상징적인 인사다.
상임위원을 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임명 가능한 위원장, 부위원장 2인 체제로 운영됐다. 원래 위원장은 방송·통신 분야 전문가로 임명하는 게 관례지만 이동관 전 위원장은 MB 정부 당시 홍보수석과 언론특보를 거쳤다. 김홍일 전 위원장은 원래 국민권익위원장 취임 5개월 만에 방통위로 자리를 옮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시절 선배로 친분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현재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 직전 이상인 부위원장 사퇴로 방통위 상임위 전체가 공석이 됐다. 부처 자체가 철저히 무력화된 것이다. 이진숙 위원장의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대전MBC 사장 시절 법인카드 유용, 과거사 관련 비상식적 발언들은 논란을 넘어 황당하다. '극우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정치적 색채가 뚜렷하지만 어쨌든 임명은 이뤄졌다.
같이 임명된 김태규 부위원장 역시 권익위 부위원장으로 있다가 긴급히 차출됐다. 다시 2인 체제. 2일 이진숙 위원장은 임명 당일 비공개 회의를 소집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추천했다. 특히 MBC 최대주주가 방송문화진흥회인 만큼 MBC 이사회 구성에 큰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임명되자마자 방송계 최대 현안을 대통령실과 여권 의도대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판결 전까지 직무정지를 맞았다. 지상파 사장 교체를 위한 이사회 구성 말고는 방통위의 다른 고유 업무들은 이제, 더 이상 눈길조차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