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용 기자 | 국내 선진 의료기술 앞세운 보건의료산업이 차세대 수익원으로 각광 받는 가운데, 의사와 의료종사자들이 고된 업무에 시달려 의료현장을 떠나 산업 역량 소실이 우려된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줄었던 외국인 대상 의료관광이 지난해 회복세를 보였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60만6000명으로, 전년 대비 2.4배(144.2%)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출입국이 제한됐음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국내 의료기술을 찾은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의료관광을 차세대 경제 산업으로 구축하겠단 목표를 세우고, 2027년까지 외국인환자 70만명을 유치하겠단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외국인 진료 수요가 피부 미용 분야에 몰릴 것이란 인식과는 달리, 의외로 대형병원에서 일반적인 진료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환자의 66.5%는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는데 그 중 종합병원(13.5%), 상급종합병원(10.6%) 순으로 많이 이용했다. 통상적으로 국내 대형병원의 수술 수요가 가장 높고 그만큼 성공사례도 많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신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료관광의 선두에 섰던 대형병원들은 최근 의료인의 잇따른 이탈로 외국인 환자는 커녕 국내 환자도 돌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의대증원에서 빚어진 의정갈등 여파로 전공의들이 여전히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으며, 간호사 등 보건의료 종사자 단체마저 오는 29일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보통 전문의가 되려면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거친 후 특정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부터 응하지 않으면서 당분간 전문의가 배출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남 P피부과 의료인은 “수련병원을 사직한 전공의가 개원가에 와서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피부미용 개원가는 이미 포화 상태다.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의사는 이 업계에서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공백을 메울 것을 강요 받는 처지지만 이직이나 사직조차 힘든 실정이다. 서울 J병원 간호사는 “일이 힘들면 사직하고 조금 편한 개인병원으로 가란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 바닥이 원체 좁고 소문도 쉽게 나서, 동료들을 놔두고 사직했다간 다시 종합병원에 취업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을 떠맡은 보건의료종사자들이 의정갈등과 고된 업무에 희생되면서, 관련 인재 명맥이 당분간 끊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재 공급이 중단되면 지역 병원 간 빈부격차만 더 커질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2022년 기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환자가 78.2%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P피부과 의료인은 “의사 수는 충분한데, 대부분의 의료인이 돈이 되는 피부미용 분야에 몰린 것이 문제”라며 “의정갈등이 장기화되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직 전공의들은 경제적 여유가 되는 인기 병원에만 취업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은 결국 형편이 좋은 소수의 병원만이 의사들을 싹쓸이하고 수도권에만 상주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