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차피 당첨 안 된다는 청약 오명…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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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어차피 당첨 안 된다는 청약 오명… 이제 그만
  • 김승현 기자
  • 승인 2024.09.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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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승현 기자
매일일보 김승현 기자

매일일보 = 김승현 기자  |  “야 그거 어차피 안 되는데 뭐 하러 찾아보냐. 아파트 주변에 학교나 마트, 지하철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고 시세는 얼마나 올랐는지 찾아볼 시간에 그냥 주식 뉴스나 보고 대출이자나 비교하는 게 더 효율적이니 그만 봐라”

지난 7월 초 동갑내기 동창과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듣게 된 말이다. 당시 기자는 청약 HOME(모바일 앱)에서 서울 내 아파트 무순위 분양정보와 경쟁률, 애꿎은 당첨조회 내역을 확인하며 결혼과 내 집 장만에 성공한 지인에 청약 당첨 비결을 물었다.

살고 싶은 강서구 아파트 단지 주변을 로드맵(사진으로 실제 주변을 확인하는 기능)으로 살피던 기자가 ‘여기서 여의도면 출퇴근도 한 시간 이내고 주변에 한강공원이랑 대형마트도 있어 너무 살기 좋겠다’라고 말했지만, 친구로부터 돌아온 답은 ‘어차피 너는 안 돼’였다.

올해 4월 결혼에 성공한 지인은 대학생 시절 기자와 함께 청약통장을 만들었던 고등학교 동창이다. 올해 9월 중순 계약이 종료되는 15평 남짓 원룸에서 4년간 직장을 다니며 결혼까지 성공한 지인은 지난 7월 말까지 무주택·신혼부부 가산점에 기대 청약을 신청했다. 여러 시도에도 결과가 신통치 않자 지난 8월 당산의 오래된 빌라로 신혼집을 정해 입주했다.

지난 7월 말 동탄역 롯데캐슬 무순위 청약에 294만4780명이 몰려 모바일 앱 접속이 불가능했던 때 기자도 해당 매물 정보를 확인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시세차익을 노려볼 수 있는 매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졌지만, 오랫동안 교제 중인 이와 결혼하게 된다면 저렴한 가격에 신축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 부모님 권유로 주택청약통장을 처음 만들 때만 하더라도 차곡차곡 적은 돈이라도 입금하면 청약 당첨의 행운이 주어질 줄 알았다. 첫 번째 직장을 구했을 때는 청약에 당첨돼 부모님 집이 아닌 나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꿈꿨지만, 달콤한 꿈에 불과했다.

기자에게 청약 신청이란 당첨될 리 없지만 구매하는 로또처럼도 느껴진다. 금요일 퇴근 후 편의점에서 로또를 구매하듯 한국부동산원 청약 HOME 앱에 설정한 맞춤 조건의 청약 공지 알람이 울리면 접속 후 신청한다. 내가 당첨자가 아님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같은 조건의 아파트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분양가상한제 관련 취재 과정에서 한 부동산 연구원은 “무주택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주거를 제공하겠다는 청약제도 취지 자체를 나쁘게 평가할 수 없다”라며 “다만 로또 청약이란 말이 있듯 현 제도는 당첨만 되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노려볼 수 있는 마치 복권처럼 변질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25일 국토교통부가 청약시장 내 로또광풍과 줍줍(무순위 청약)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제도 개선 의지를 밝힌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현 제도가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꾀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해당 지역 무주택자에게 우선 청약 기회를 주는 방법도 고려해봄직 하다. 출산을 앞둔 가정이나 신혼부부에게 지금보다 파격적인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특정 면적(중소형) 이하 아파트는 무주택 세대주에 먼저 공급한 뒤 남은 물량에 한해 다시 신청받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십 수년간 청약통장에 일정 금액을 꼬박꼬박 입금했고 졸업 후 직장생활을 이어가며 신혼집을 찾는 무주택자와 시세차익을 노려 접근한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청약 신청이란 시세차익을 통한 일확천금을 노린 행위가 아닌 실거주에 필요한 주택을 저렴하게 구매할 기회의 문이다. 정부가 청약제도의 원래 취지를 되찾고 운영할 수 있는 깊고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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