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리 인하 눈앞...전문가들 “가계대출 단기 진정 쉽지 않아”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집값’이 꿈틀대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까지 임박하면서 가계빚이 경제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말에서 2022년 상반기까지 급등했던 국내 주택값은 이후 대체로 하락세를 보였지만 최근 몇 달 사이에 다시 완연한 상승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어느새 집값 하락 걱정은 사라지고, 집값 급등을 걱정하는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집값 급등이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던 만큼,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달 들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를 풀어 주택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8·8 부동산 대책을 공개했고, 지난주에는 집값 상승세를 고려한 대출 규제를 추가로 발표했다. 주택 거래가 늘며 가계빚이 들썩이자 대출 규제도 강화하기 시작했다.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9월부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인다는 대출규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이달부터 시행하는 규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계산할 때 쓰는 ‘스트레스 금리’를 높이는 방식이다. DSR은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대출을 할 때 적용받는 대표적 규제다. 한 사람이 대출받을 때 모든 금융권 대출을 합쳐서 1년마다 갚아야 할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을 따져보는 걸 뜻한다. 1년마다 갚을 모든 대출 원리금과 연 소득 비율을 ‘DSR’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국내에선 DSR이 40%를 넘길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1년 치를 합쳤을 때 연 소득의 40%를 넘기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스트레스 금리는 금리가 변하는 대출(금리 변동형 대출)을 개인에게 해줄 때 미래의 금리 변동을 고려해서 조금 더 깐깐하게 DSR을 심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충분히 돈을 갚을 만한 고객이라고 판단하고 은행이 연 3% 금리로 대출을 해줬더라도, 몇 년 새 경제 상황이 급변해서 금리가 6%가 되는 경우엔 고객이 빚을 못 갚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DSR을 따질 때 현재 금리보다 조금 더 엄격한 기준(높은 금리)을 적용하는 게 ‘스트레스 DSR’ 제도다. 미래에 올라갈 수도 있는 금리(스트레스 금리)를 가정해서 계산하는 식이다.
올해 2월부터는 실제 금리보다 스트레스 금리를 0.35%포인트 더하는 ‘스트레스 DSR 1단계’가 시행됐고, 이달 부턴 주택담보대출 심사 시 비수도권에서는 0.75%포인트, 수도권에선 1.20%포인트를 더해서 심사하는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원래는 지역에 상관없이 0.75%포인트만 더 하려고 했다가 수도권에서 집값 급등 조짐이 보이자,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하기로 한 거다.
정부가 수도권에 더 강한 규제를 적용하기로 한 건, 서울의 집값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부동산 시장 조사 담당 공기업인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주택 가격지수는 6월 대비 0.76% 상승해 5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어 올랐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선호도 높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주택거래가 늘며 우리나라 전체 개인들(가계)이 진 빚은 확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0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가계대출과 판매 신용(아직 갚지 않은 신용카드 사용 금액)을 합친 가계 빚은 올해 2분기에 처음으로 1890조원 선을 넘어섰다. 올해 1분기에는 작년 4분기보다 줄었었는데, 갑자기 14조원 가까이 늘어난 거다. 당연히 가계 빚을 확 늘린 원인은 주담대의 증가세였다. 올해 2분기 말 국내 가계의 주담대는 직전 분기보다 16조 원 늘어난 1092조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0조 9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정부는 앞서 발표한 주택 공급 대책과 9월부터 시작되는 스트레스 DSR 강화 조치에도 주택 가격 상승과 가계 빚 증가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추가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DSR 규제를 더 강화할 수도 있고, 다른 규제를 마련할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 당장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힘들 거라는 전망을 대체로 내놓고 있다. 실제로 주택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가 주택이 밀집한 강남 3구 등 지역에선 수요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곧 시작될 전망인 점도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보기에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도 곧 금리가 내려갈 텐데,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대출을 조이는 건 완전히 반대로 가는 정책인 셈이어서다.
일단 한국은행도 집값 급등과 가계 빚 급증 우려에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미뤘다. 물가는 충분히 안정세를 찾았고 이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내릴 때가 됐지만, 금리 인하가 대출을 쉽게 만들어 주택 가격 상승을 더 자극할 수 있는 만큼 망설이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