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조 사업 확대는커녕 기존 프로젝트 마저 제자리
HD현대重 한화오션 KDDX 법적 다툼에 방산 수주 우려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러-우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대만 불안이 심화되면서 중국·러시아발 해양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선 해군력 증강 열풍이 불고 있다. 외부 위협에 맞서 주권 수역과 해상교통로를 보호하지 못할 경우 엄청난 경제적 타격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20년 전 계획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전쟁과 지역 안보 위기가 급격한 국방비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주변에선 중국이 대만 복속 준비와 남중국해 장악을 시도하기 위해 해군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면서 주변 국가들이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중국은 1만3000t급 대형 구축함부터 7500t급 방공 구축함, 4000~6000t급 호위함을 찍어내듯 건조하고 있다. 최근 중국 조선소에서 진수되는 중대형 전투함만 한해 10~20척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도 기존 건함 사업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며 해군력 증강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이른바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이라는 기준배수량 1만2000톤급의 대형 전투함 2척 도입을 확정했고, 당초 5500톤급 덩치의 2선급 호위함 도입 사업이었던 모가미급 호위함 사업을 대폭 수정했다. 기존형 모가미급은 12척만 도입하고, 배수량을 1000톤 이상 확장해 중무장·고성능화한 개량형 10척을 추가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캐나다·호주·필리핀·싱가포르·인도네시아·대만 등 태평양 지역 나라들도 대대적인 해군력 증강 사업을 진행하며 해양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의 해군력 증강 열풍에도 우리나라는 건함 사업을 확대하기는커녕 기존 프로젝트마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며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의 86.1%를 수출이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운은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차지했다. 바닷길을 지키는 일이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수호하는 최우선 국정 과제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 12년 전에 수립한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확정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6척 도입 계획도, 기존 노후 호위함·초계함 대체를 위해 26척의 신형 호위함을 단계적으로 건조한다는 20년 전 계획도 그대로다. 특히 KDDX 사업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경쟁을 넘어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해당 사업의 개념설계는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행했다. 방위사업청은 당초 지난 7월 상세설계 및 초도함을 제작할 업체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현재 경찰은 KDDX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당시 왕정홍 전 방사청장이 HD현대중공업에 유리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는 의혹과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행위 당시 임원도 개입했다는 의혹, HD현대중공업 직원이 한화오션 임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KDDX 입찰 비리 의혹과 관련해 신속 종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KDDX 사업 지연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당장 상세설계 및 초도함 제작에 들어간다고 해도 2030년으로 초도함 인도 일정을 맞추기 빠듯하다는 것이다.
이에 국가 안보는 물론 해외 방산 수주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산 대기업들 간의 갈등은 그 자체로도 업계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10조원 규모의 호주 차기 호위함 사업과 70조원 규모의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에서 각각 '원팀'으로 참가한 일본이나 독일에 밀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KDDX 입찰 절차가 두 달째 지연된 것만으로도 국가 안보에 큰 손실"이라며 "해외 방산 수주는 국가와 국가 간의 경쟁인데 이런 갈등은 우리나라 방산 경쟁력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