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의대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지난 3일 진행된 ‘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통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전의교협은 정부를 향해 △의평원 무력화 시도 중단 △의대증원 백지화 및 재논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파기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아래는 시국선언문 전문.
2024년 2월 6일 정부의 잘못된 의료 정책 추진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의료는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응급 환자들은 치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지 못해 전국을 떠돌고, 암환자는 제때 수술 받지 못해 불안감에 떨고 있으며, 교수들은 과도한 업무로 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스트레스 및 피로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의과 대학은 교육과 연구라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자랑거리였던 의료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젊은 의사들과 학생들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미래를 한탄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작금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의료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민 건강을 지키고 의료 발전을 통해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던 우리의 의료 시스템이, 현 정부의 아집과 독선 속에 단 8개월 만에 완전히 무너지고 있음을 보며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의료는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영역입니다. 초기가 아니면 대부분 사망한다던 폐암 환자들이 면역항암제, 표적치료제 등을 통해 장기 생존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수행하던 암수술을 하루에 세네개도 가능하게 된 것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간 의료진들의 피땀 어린 노력들 덕분이었습니다. 이렇듯 과거의 진료 역량과 현재의 역량은 차이가 많이 나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10년 뒤에 오히려 남아 돌지 모르는 의사 수를, 과학적이지 못하고 주술적인 숫자로 계산해 추계하고 개혁을 빙자한 개악안을 남발하며 의료시스템 자체를 허물어 뜨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미래의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세계 속에서 의학 발전을 담당해야 할 학생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치열하고 집중적인 반복 교육과 실습을 통해 한걸음씩 이루어져 가야함을 망각한 채,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학년이 쉼없이 올라가는 저질 의사의 길을 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지도하며 세계적인 리더를 키워나가야 할 의무를 가진 의과대학조차 그 근본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아예 교육을 하지 않아도, 교육과 실습 공간이 없어도, 임상 실습을 할 병원이 부족해도, 가르칠 교수가 없어도 의평원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악의 수를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10월에 이르러 스스로의 판단과 자유의지로 결정한 휴학조차 강압으로 승인되지 못하게 대학을 압박하고 승인한 대학에게 전방위적인 감사를 해 초헌법적인 통제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추진 못한 교수를 채용하고 전세계가 인정하는 의과대학의 기본적인 수준에 부합하지 않게 되는 것이 명백해 학생들의 수준 저하가 뻔한데도 단지 정부의 2천명 증원 하나만 통과시킬 수 있다면, 오로지 대통령 한 명의 잘못된 자존심과 체면을 위해서라면 우리 다음 세대들의 국민 건강은 내팽개쳐지고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정부의 모습에 전국 의대 교수들은 좌절하고 분노합니다.
현재 정부 정책은 3가지로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엑셀레이터를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마구 눌러 주행해 국민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급발진 정부입니다.
가야할 방향을 반대로 인식해 국민들에게 대혼란을 야기하는 역주행 정부입니다. 주변 모두가 운전대를 잡지 말라고, 같이 타고 있는 가족들조차 말리는데도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라고 우겨대며 끝까지 진행하는 음주운전 정부입니다.
급발진과 역주행, 음주운전을 일삼고 있는 현 정부 정책을 멈추지 못한다면 정말 우리나라의 의료의 미래는 좌절과 비극 뿐일 것입니다. 언론인과 모든 지식인, 정치인들을 포함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고합니다.
지금의 정부가 행하고 있는 미래의료를 망가뜨리고 있는 모습에 동의하십니까? 인구 절벽과 고령화에 처한 우리나라에서 미래에 발생할 과도한 의료 수요와 의료비의 부담을 우리 후손들에게 전가하고 저질 의료를 대가로 넘기실 것입니까?
향후 미래의 의사를 꿈꾸며 공부하는 의대생들과 의대에 들어오고자 하는 수험생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상상으로 환자를 돌보는 돌팔이 의사로 키워질지 모르는 정부 정책을 동의하십니까?
25년 의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불안해하는 많은 수험생들과 학부형 가족들께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후 26년, 27년, 미래의 수험생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그 피해가 전가된다면 국민들은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에 의대 교수들은 다음을 선언합니다.
첫째 고등교육기관의 평가 규정 개정으로 아시아에 유일하게 인증을 받은 의평원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둘째,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에 대해 25년부터 당장 중단하고 다시 논의하라.
셋째, 의료계와 함께 논의 되지 않는 허울뿐인 필수 의료 패키지와 의개특위는 파기하라.
넷째, 불법 증원을 밀어붙이고 의학 교육을 파괴하려는 책임자들을 즉각 처벌하라.
여기 한 자리에 모인 분들을 포함해 전국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과 학생들이 다시 돌아오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현재까지 모든 고통을 인내하며 지난 8개월을 버텨왔습니다. 지역의료를 지키고자, 필수 의료를 지키고자, 중증 환자들을 살리고자 진료를 이어왔고 전공의들이 돌아올 터전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학생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 교육이 부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고통과 굴욕도 모자라서 의과대학의 저질 교육과 운영을 목도해야 되는 상황에 처한 지금, "좌시하고만 있는 의대 교수"는 “밟으면 꿈뜰거리는 지렁이”만도 못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의 굴욕을 참지 않겠습니다. 정부의 폭거에 분연히 일어나서 항거합시다. 제자들을 지켜내서 미래 다음 세대의 건강권을 지켜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