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영국에서 발생했던 사건이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개인별 휴대전화에 메신저 앱을 다운로드하라고 지시한 후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단체 채팅방을 개설했다. 채팅방의 목적은 업무상 실수를 줄이고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채팅방의 알림은 낮이고 밤이고 쉴 새 없이 울렸다. 한 직원이 앱 사용에 대해 거부의 의사표시를 여러 차례 했다. 회사는 얼마 후 해당 직원이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라고 주장하며 고용관계를 종료했다.
영국 고용심판소는 해당 사건에 대하여 “합리적인 사용자라면 근로자가 침해적 성격의 업무 관련 앱을 개인 휴대전화에 설치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그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용자의 방식은 근로자가 일상과 업무 생활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심판소는 회사에 대하여 근로자에게 한화로 수천만원에 달하는 금전보상을 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해외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메일, 메신저 등으로 과도하게 연결된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외의 시간에는 해방될 권리를 부여하자는 게 취지다.
호주는 공정근로법(Fair Work Act)을 개정해 벌금이 부과될 수 있는 관련 법을 올해 8월부터 시행했고, 영국은 노동당이 정권을 잡으며 논쟁에 불이 붙었다.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등 유사한 내용을 법제화해 이미 시행하고 있는 국가도 꽤 있다. 이러한 흐름과 다르게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것이 마냥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
법적으로 ‘근로시간’이란 사용자 지휘·감독 아래에서 근로계약상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우리나라 일터에서도 상사들이 업무를 이유로 들며 퇴근 후, 휴일, 휴가와 같은 때에 이메일, 단체메시지 등으로 업무연락을 취하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근로자가 이러한 연락에 응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자의 처분 아래에 둔 경우 그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돼야 한다.
근로시간과 관련된 개념이 자리잡으면서 근로 시간제 개편에 적극적인 기업이 많다. 하지만 사실상 근로시간을 증대하는 요인은 따로 있으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허울뿐인 제도만 남게 되는 것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산업안전 및 산업재해와도 맞닿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제5조 제1항 제2호). 또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될 소지가 높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
단순히 밤늦게 메시지 하나 보냈다고 이를 사용자의 근로계약상 부수적 의무인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사정 혹은 업무와 재해 간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사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연결 시도가 과도한 경우 근로자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시간 외 연락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행위로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대체로 실무에서 직장 내 괴롭힘 해당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법적 요건은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것인지 여부’라고 할 것인데, 이 기준에는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어도 행위 양태가 사회통념에 비추어 상당하지 않은 때’도 포함된다.
즉, 업무를 명목으로 했더라도 상식적으로 제3자가 보았을 때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근로자에게 시간 외 커뮤니케이션을 강요하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업종 및 직무 등을 고려할 때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도입이 적합하다면 법제화가 되지 않아도 기업의 재량에 따라 일정한 방침을 제정 및 시행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단체 채팅방, 이메일 등을 통한 연락 가능 시간대 설정 △예외적으로 시간 외 연락이 가능한 경우 열거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사내 공지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침해된 경우 고충상담 실시 등의 방안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도입 전에 구성원 설문조사, 기존 근로시간 관련 제도 분석 등이 병행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조직에서 변화를 시도할 때 다수 구성원의 반발이 우려되는 경우 상향식(Bottom-Up) 의사결정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저항할 근로자는 흔치 않으리라고 예상한다. 하위 계층에서는 어느 정도 암묵적인 합의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므로 상위 계층의 인식 개선과 실천을 유도하는 것이 그 자체로 실효적인 근로시간 제도로서 작용하고, 더 나아가 종업원 동기부여를 위한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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