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박예슬 기자] #. 지난 2012년 한 식품업체의 지방 대리점주 A씨는 본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받았다. 본사가 해당 지역의 대형 할인점 납품까지 맡긴 것. 밀어내야 할 물량에 빚까지 떠맡은 A씨는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국내 유통업계의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업체’의 수는 각각 64대 3만9000. 어느 업계보다도 하도급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통업계는 언제나 ‘갑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처럼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 등 각종 불공정행위로 비난을 샀던 유통업체들이 기존의 보여주기식 정책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랜드는 최근 ‘관계 회복’을 주제로 켄싱턴 리조트 설악 비치점에서 중소 협력업체 임직원과 가족 200여명을 초청해 2박3일 일정의 ‘힐링 캠프’를 진행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지난해 11월 중소 협력업체와 체결한 동반성장 협약의 이행 과정에서 실시한 것”이라며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협력사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은 ‘헬로 스마일’캠페인의 일환으로 백화점 내 협력사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노래방, 두더지 게임 등의 시설을 갖춘 ‘스트레스 프리존’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납품비리 등 일련의 사태로 ‘퇴출 위기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롯데홈쇼핑은 업계 최초로 ‘경영투명성위원회’사무국을 설립, 장기적으로 협력사 등과의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에 나섰다.
롯데홈쇼핑의 경영투명성위원회는 청렴경영 정착과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 업무를 맡는다. 협력사와 고객들이 불만 사항을 접수할 수도 있다.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무국 위치도 본사가 아닌 중소기업중앙회 본관으로 선정, 사무국원도 자체적으로 선발토록 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지난해 비리 사건을 겪고 내부적으로 쇄신을 위해 이번 위원회를 설립한 것”이라며 “기존의 ‘보여주기’식 개선책이 아닌 실질적으로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밝혔다.
앞서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임직원과 협력사가 동참하는 ‘청렴계약제’를 실시, 공정한 거래를 할 것을 약속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계약취소·입찰자격 박탈 등 제재를 가하도록 한 바 있다.
또 전 임직원에게 업무활동비로 ‘클린경영 활동비’를 지급해 불법적인 자금거래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도 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유통업계의 자구책에 대해서는 아직은 지켜봐야 할 단계”라며 “과거에 발생했던 불공정거래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협력업체와 소비자들을 설득할 만한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정위와 같은 당국에서 재발을 방지할 만한 정확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동시에 면밀한 감시를 통해 강도 높은 제채를 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