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날 버렸다” 또 다시 막가파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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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날 버렸다” 또 다시 막가파 범죄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6.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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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만 보면 죽이고 싶었다~”
봉천동 세자매 살인사건과 시민들의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던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지난 2004년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극악무도한 범죄가 일어난 것이다.

봉천동에서 세 자매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24일 구속된 정모(37)씨는 연일 새로운 범죄사실을 자백하고 있어 시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정씨는 3월 27일 봉천8동 김모(57)씨 집에 침입, 자고 있던 세자매를 둔기로 때려 2명을 살해하고 막내딸에게 중상을 입혔다.

정씨는 또 이른바 ‘서울 판 살인의 추억’ 의 일부도 자신의 범죄라고 자백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정씨의 범행 건수는 13건이다.

이 중 5명을 살해하고 14명이나 중상을 입혔는데 날마다2~3건씩의 추가 범행이 확인되고 있어 피해자는 더 늘 가능성도 있다.

이 사건은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고 돈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은 ‘묻지마’ 범죄라는 사실에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돈이 목적이 아닌 사회에 대한 보복차원의 막가파 범죄
“범죄 후 만족감 느꼈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죄의 동기를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사람이며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정씨는 부자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주로 서민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13세 어린아이나 정신지체 장애여성과 노인들에게도 비정하게 흉기를 휘둘렀다.

정씨는 단순히 용돈이 떨어지면 범죄 가능성이 높은 만만한 대상이 사는 곳을 범행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니면서 CCTV가 없을 만한 동네에 내려 주변을 살피고 출입문이 잠겨있지 않은 집을 골라서 범행을 저지르는 치밀함에 시민들은 치를 떨었다.

경찰에 따르면 우선 정씨는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니 않도록 현장에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는 여러 켤레의 운동화를 바꿔 신고 자신의 주거지인 인천 부평구에서 1시간 이상 거리인 서울 서남부 지역을 대상으로 선택했다.

부유층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도 막상 강남지역을 범행 장소로 택하지 않은 것은 CCTV가 많이 설치돼 있다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결과 정씨는 혈흔이 낭자한 범행현장에서는 피냄새를 맡으며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고 인육을 먹었다는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처럼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들에게 똑같은 충동을 느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집안에서 ‘양들의 침묵’ 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를 보면서 범죄를 치밀함을 연구했다는 점과 범행 후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하는 정씨의 말에 경찰들도 섬뜩함을 느꼈다고 한다.

정씨는 2004년 초중반에 저지른 사건과 2005년 이후 저지른 사건의 수법이 다른 점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라고 진술하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양재호 형사과장은 "처음에는 칼을 사용하다가 둔기로 바꾼 이유는 범행 방법을 달리하면서 수사를 하는데 혼선을 주기 위해서 라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밖에 정씨는 범행에 쓰인 흉기와 둔기들을 미리 구입하거나 공사장 등에서 훔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가 붙잡히자 피해자 가족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봉천동 세자매 피습 사건에서 큰딸과 둘째 딸을 잃은 박모(여·48)씨는 “아직 막내는 병원에서 언니들이 죽은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다. 정씨를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다.” 고 말해 주위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시민들의 힘으로 잡은 살인마
‘경찰은 무엇을 했나?’

한편 이번 정씨 사건에 관련하여 그동안 경찰들은 무엇을 했나? 라는 의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정씨의 범행이 2년이 넘도록 계속 돼왔는데 왜 그동안 붙잡지 못했냐는 것이다.

시민들은 경찰의 허술한 공조수사가 피해자를 늘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보고 있다.

경찰은 지난 24일 언론에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까지도 관악·동작·영등포경찰서 어느 곳도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전담반과 이 사건에 대해 공조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씨가 순순히 자신의 범행 사실을 경찰에 털어놓지 않았다면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 시민들은 정씨가 잡힌 날 경찰은 시민이 검거해 넘긴 용의자를 순찰차로 데려가던 도중 한 차례 놓치는 실수를 범한 뒤 1시간 넘게 수색을 하고도 찾지 못하다가 동네 주민이 용의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용의자를 다시 검거해 경찰능력이 의심스럽다고 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정씨는 22일 새벽 4시45분께 영등포구 신길동 김모(47)씨 반지하집에 금품을 훔치려고 들어갔다가 김씨 등과 격투 끝에 붙잡혔다.

정씨가 휘두른 둔기에 맞았던 김씨 아들(26)은 아버지와 함께 정씨를 제압해 112에 신고했고 인근 지구대 경찰관 2명이 현장에 도착, 한명은 피를 흘리던 김씨 아들을 돕고 다른 한명은 정씨를 체포한 뒤 집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김씨집 밖으로 나간 경찰관은 정씨를 순찰차 인근으로 데려갔지만 차량 문을 여는 순간 정씨는 수갑을 찬 채 달아나 버렸다.

정씨를 놓친 경찰은 경찰병력 100여명을 동원해 주변 수색과 시민의 제보로 다시 재검거하는 해프닝을 낳은 것이다.

공포의 시간들-서남부 일대 주민들 일단 안도

일단 관악구나 구로·시흥 등 서남부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정씨가 잡혔다는 소식에 한시름 놓은 분위기다.

봉천동에 살고 있는 최 모(여.32)씨는 “그동안 이 일대는 공포의 시간들이었다. 비 오는 날이나 밤에는 더욱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다.

또 집에 있어도 불안해서 약을 먹었다.

문을 잠궈도 언제 범인이 들어올지 몰라 불안했다.”며 다행히 범인이 잡혀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민들은 강남이나 여타 다른 지역에 비해 방범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점을 문제점으로 꼽으며 범죄의 재발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주민 이 모(남.42)씨는 “남자인 나도 이 지역 밤이 되면 무섭다.

소문도 무성할뿐더러 다른 지역 보다 CCTV같은 방범시설을 확충해서 이 같은 범죄를 좀 예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씨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에 일반 시민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또, 현장검증에서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히 범행당시 상황을 재연해 내는 모습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장검증에서 정씨의 범행재연 모습을 보던 한 주민은 “아이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자꾸 아이들 모습이 생각나 안타깝다.” 며 정씨를 사형시키라며 경찰에게 부탁했다.

네티즌 김모(35)씨는 “부자가 싫다면서 가난한 사람들만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며 “자신이 살기 힘들다는 이유하나로 아무한테나 공격했다니 정말 무서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진모(33)씨도 정씨와 같은 사람은 사회악이라고 꼬집으며 완전 격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티즌들 대부분은 정씨에게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7206315라는 네티즌은 “사형집행을 가끔씩이라도 하면 누가 뭐래도 흉악범은 감소한다.”며 사형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혔다.

또 무고한 타인의 목숨을 앗아간 정씨는 그냥 사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종신 징역형을 내리고 매일 고문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묻지마' 증오범죄의 원인을 점점 심해지는 빈부 양극화에 따른 소외감과 박탈감, 인간 존엄성이 상실 된 현대 사회의 비도덕성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범행 동기로 내세우는 이들 범죄인이 정작 자신과 경제적인 처지가 비슷한 서민층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범죄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볼 때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시민들은 이번 정씨의 사건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증오심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을 떠 올린다.

지난 2004년 불특정 여성들을 상대로 잔인한 연쇄살인극을 펼쳤던 유영철 또한 사회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 찼던 인물이었다.

시민들은 정씨가 유영철의 범죄를 모방한 측면이 많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씨가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돈은 고작 10여 만원 밖에 훔치지 않은 점들은 과거 유영철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이다.

한편 계속 된 연쇄범죄에 대해 시민들은 정부차원에서 범죄예방 계획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회에서도 아직 범죄예방의 관점에서 사회정책 관련 법안을 마련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때문에 통합적인 법률과 사회정책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연쇄악질 범죄가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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