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일부터 개헌을 위한 여론 수렴 작업에 나섰지만 개헌 여론은 여전히 찬반 의견이 팽팽한 상황. 특히 국민의 70%가 “다음 정권 이후에”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어 국민이 대통령의 바람을 받아들이기엔 ‘개헌’이라는 단어가 아직까지는 ‘낯선’ 용어인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국민은 왜 개헌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역사의 ‘오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4일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경찰과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상황에서 의원들의 ‘기립’ 투표로 통과시켰다. 국회를 권력의 들러리로 전락시켰는데 이게 바로 ‘발췌개헌’이다.
2년 뒤인 1954년 11월2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영구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을 폐지한다는 개헌안을 또다시 제출했고, 표결결과는 203명 중 찬성이 134표, 반대 60표, 기권 7표로서 1표가 부족해 부결됐다.
그러나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재적의원 204명을 사사오입하면 135명으로 3분의 3가 된다는 기상천외한 논리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한국헌정사의 비극적인 출발점으로 불리우는 ‘사사오입’ 개헌이다.
‘개헌’이라는 단어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례는 또 있다. 한국 헌정사상 7차로 개정된 제4공화국의 헌법이 바로 그 것. 박정희 전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 지향, 민주주의 토착화,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자유경제질서확립, 자유와 평화수호의 재확인’을 기본 성격으로 한 개헌안을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했고, 1972년 11월21일 국민투표로 확정, 이를 12월27일에 공포했는데 이게 바로 유신헌법이다.
유신헌법은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이었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권력구조상에 있어 대통령 권한의 비대로 독재를 가능하게 한 헌법이었다.
반대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개헌 발의는 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것도,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