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노동계와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의 사례를 모든 금융기관이 도입하도록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우리은행을 모범사례로 추켜세우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이번 노사협상안을 '복음'이라고까지 극찬하며 "우리은행 노사가 함께 결단해 고용 안정을 이룬 것은 사회에 확산될 모범"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전환이 언론 등에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런 비난의 근저에는 비정규직 전환 작업이 우리은행의 특수한 내부 사정에 기인했다는 주장과 함께, 사측과 노조의 합의 과정에서 전체 노조원들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깔려있다.
이로 인해 현재 노조 내부에서는 집행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집행부 '탄핵'이라는 극단적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환 작업에서 제외된 260여명의 본점 사무계약직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비정규직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전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노조에서 조합원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을 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협상을 그렇게 좋은 조건에(2년째 임금 동결)타결하고, TV에도 출연해 정규직 직원들의 협조로 비정규직을 전환하게 됐다고 말했는데, 조합원들에게 협조해 달라고 물어봤나? 노조 마음대로 처리하고 이제 어찌할 건가?"
"비정규직 밑의 비정규직이다. 우리가 진정 우리은행의 가족이 맞기는 한가? 사무계약직 직원들을 언제까지 단순 반복직으로 볼 건지 답답하다"
우리은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온 직후 우리은행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언론에서는 연일 '금융권의 모범사례', '은행장의 용기 있는 결단', '정규직원들의 아름다운 희생' 등의 제목 아래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철폐 결정에 대한 긍정적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막상 가장 들떠있어야 할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정규직원들의 협조?...의견 수렴 과정 없었다
이번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전환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정규직 직원들이 '아름다운(?) 희생'으로 '임금동결'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영기 행장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가 과감하게 임금 동결에 동의해준 '결단' 덕분에 비정규직의 전환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노조가 급여 인상을 요구하는 대신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선택했다는 얘기. 이로 인해 절약되는 비용을 비정규직의 전환작업으로 인해 들어가는 복리후생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임금 동결' 결정이 순전히 노조 집행부와 사측간에 협의된 것일 뿐 논의 과정에서 전체 노조원들의 의견 수렴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때문에 사측은 임단협을 통해 임금 동결을 주장해왔고, 당초 이에 반대하던 노조 집행부는 '비정규직 철폐' 카드를 조건으로 내세워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는 얘기다.
전 직원의 정규직화를 이끌어 낸 노조 집행부 역시 3100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새로 끌어안으며, 더욱 탄탄한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우리은행 "잘했다, 칭찬은 안하고 왜 이러나"
이에 대해 우리은행 노조 조용진 부위원장은 "노사 합의에서 의견 수렴 과정이 불충분했던 측면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까지 임금협상을 비롯해 중요 사안을 논의할 때 노조원 전체와 상의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비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제기했다.
정규직 전환 제외된 사무계약직 행보는?
한편 이번에 정규직 전환 작업에서 빠진 260여명의 본점 각 부서 사무계약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거센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현재 '단일직군제' 도입에 따라 비정규직도 '매스마케팅(창구직원)', '고객만족(CS)', '사무지원' 직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이번 전환작업에서 이 직군에 포함되지 않은 본부 사무계약직원은 제외됐다. 때문에 이번 합의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통해 비정규직 내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일부 사무계약직 내에서는 "비정규직 철폐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여기저기서 부러움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정작 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너무나 답답하다"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에 대해 노조 측 조용진 부위원장은 "노조에서도 합의 당시 본부 여기저기에 소규모로 퍼져있는 사무계약직원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면서 "이들에 대한 업무 분석을 마치고, 필요한 인력을 가려낸 후 정규직화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우리은행 홍보실 오승욱 부부장은 "사무계약직의 전환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논의가 오가고 있다"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다소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