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중간 호황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사실 이 문제는 90년대 200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인력 공급도 넘쳐났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수요가 이를 커버했을 뿐이다.
저출산의 심각함이 두드러진 2010년대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원래 자원 하나 안 나는 한국은 국제 금리 변동이나 환율,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변수에 민감한 구조다. 계산기 두드리지 않고 국력 신장에만 매진해온 70~80년대를 거치면서 100을 쌓아왔는데 넘쳐났던 인력공급이 어느샌가 부족해졌다.
과거의 영광에서 못 벗어난 상부에서는 자꾸 120, 140을 외친다. 막상 현장에서는 20, 40을 더 해올 인력은 없는데 외부변수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다 보니 본전인 100은커녕 80, 90 지키는 것도 벅차다.
필자 판단으로는 조선업이 딱 그 모양이다.
“미국의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건조 능력을 알고 있다”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한마디에 조선과 방산 관련주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 측도 트럼프 한국조선 발언이 나온지 얼마 안 돼 “조선업계가 필요하다면 법무부와 협의해 전문인력비자(E7) 확대를 검토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동안 인력 부족 때문에 고생한 것 아니까 정부가 이제부터 해결해주겠다는 늬앙스다.
막상 현장에서는 코웃음 친다.
애초 군사강국인 미국이 잠수함이나 항공모함에서 한국에 큰 역할을 기대할 리는 없고 남는 것은 자원 채굴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는 신재생 에너지보다는 석유나 천연가스 채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한국 조선업이 강점으로 삼는 고부가가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라든지 대형 컨테이너선은 이와 거리가 멀다. 과거 국내 조선업의 효자 부문이었던 해양플랜트와 시추선 사업이 살아있다면 모를까.
해양플랜트와 시추선 사업 부문은 2010년대 중반 조선업계 부실사태로 대부분이 정리된 상황이다. 당연히 넘쳐나던 숙련공들도 당시 전직이나 해외유출이라는 형태로 정리됐다. 그만큼 노하우도 없다.
젊은 기능공들을 쓰려고 해도 이들을 배출하는 대학과 관련 전공들은 거의 폐쇄되거나 통폐합됐다. 그 과정에서 급여도 대폭 줄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젊은층들이 안전 위험도 높은 조선업에 종사하려 할 지는 의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문제를 파생시킨 것은 정부였다.
결은 약간 다를지 몰라도 건설업도 상황이 비슷하다. 젊은 기능공들은 안전 리스크와 적은 급여문제로 관련업에 종사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현 정부도 단순 인력 부족 문제로 보고 외국인 노동력 충원이나 규제 완화 같은 1차원적인 대안만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AI가 발달했다 해도 조선업이나 건설업 모두 아직은 사람의 손을 타야하는 직종이고, 당분간 대한민국 하면 내세울 수 있는 효자 업종이다.
지난 수년간 관련 업종들의 호소에도 모르쇠 하다 이제 와서 트럼프다 저출산이다 해서 숟가락이라도 꽂으려는 행태는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지경이다.
수십년 전부터 제기돼 온 정부와 정치권이 산업현장 한번이라도 더 가보고 단순 인력 부족이 아닌 사회구조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은 지금도 유효한 듯 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