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호 경제] "전경련 회장 선출은 교황을 뽑는 과정보다도 알려진 것이 없다" "회장단 회의에서 나온 얘기들은 전경련 내에서도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 차기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잡음이 계속되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한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단체인 전경련이 최근 회장 선출과 관련해 내홍을 겪고 있다.
급기야 일각에서는 전경련 '무용론'까지 일며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 즉 재계의 구심점이 되야 할 전경련이 오히려 재계 분열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전경련 내부에 존재했던 미묘한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7일 강신호 회장이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힘에 따라 회장 인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사실 지난달 25일 이루어진 강 회장의 재추대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권유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직후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이 전경련 비상근 부회장직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을 필두로 한 전경련 내의 대기업(이른바 '실세기업)과 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중견기업 간의 입장 차이가 표면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경련은 회장 선출을 위한 총회를 오는 27일 전경련 회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당분간 조건호 상근부회장의 대행 체제를 유지하거나 지난 89년 유창순 전 국무총리를 영입했던 것처럼 외부인사를 영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강 회장 추대, 실세 총수들 독단 결정?
강 회장은 지난 6일 조건호 전경련 상근 부회장을 통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차기 회장직을 수락하지 않겠다"는 뜻을 발표했다. 조 부회장은 "강 회장의 연임 포기 이유는 '여러 가기 사정' 때문이라며 "일일이 이야기하기는 그렇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말했다.여기서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은 둘째 아들인 강문석 수석무역대표와 최근 다시 불거진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전경련 부회장 자진사퇴 등을 말하는 것. 그런가하면 7일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국제경영원 주최 신춘포럼 행사장에서 강 회장은 "전경련 회장 새 후보가 추대되면 동아제약의 경영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새 후보를 어떻게 추대할 지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따라갈 뿐"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지난달 25일 회장단 회의에서 이달 임기가 만료되는 강 회장을 재추대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강 회장의 연임 문제는 시작부터 적지 않은 논란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 세 번째 연임인데다, 동아제약 경영권을 둘러싸고 '부자의 난'을 벌였고 지난해 8월에는 '황혼이혼'까지 감행(?)해 재계 '어른'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경련 내부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계 총수의 대표격인 삼성 이건희 회장이 공개적으로 강 회장 연임을 지지하는 등 지원사격을 해 재추대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25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20여 개 월만에 얼굴을 내밀고, 이 자리에서 '강 회장이 한번 더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조건호 부회장은 회의가 끝난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강 회장은 재계 수장격인 이건희 회장에서 전경련 회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으로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사양하고 대신에 강 회장이 한 번 더 회장직을 수행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의에 불참한 총수들도 논의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덧붙였다.당시 대다수의 언론은 이날 회장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강 회장의 재추대가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만장일치', '공감대 형성' 등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속사정이 있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즉 이 회장을 필두로 한 전경련 내 '실세 총수'들이 독'대안부재'를 내세워 강 회장을 추대한 것과 달리 일부 중견기업 회장들은 이에 불만을 가졌다는 것. 결국 강 회장 연임을 찬성한 이 회장 중심의 일부 총수들과 반대하는 총수들간의 갈등 구도가 형성됐다는 얘기다.김준기 회장 사퇴, 재-재 갈등 촉발되나
이를 뒷받침하듯 회장단 회의 직후인 지난 1일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개혁 부진'을 이유로 전경련 비상임 부회장직을 사퇴했다. 김 회장의 사퇴 소식은 재계 안팎에 큰 충격을 던져 줬는데, 전경련 출범 이후 지금까지 해당 기업 총수의 타계, 또는 기업 부도 외에 회원직을 사퇴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 이와 관련해 동부 관계자는 "김 회장은 지난 2005년 2월부터 1여 년 간 전경련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 주장해왔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에 실망감을 느끼고 벌써 지난해부터 전경련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 더욱이 김 회장은 이번 회장단 회의에도 나오지 않았는데, 동부 관계자는 "회의 참석이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면서도 "사실 회장단 회의에서 강 회장 재추대를 결정하기 전 제대로 된 합의과정이 없었다"고 말해 강 회장 연임에 찬성하는 쪽은 아니었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김 회장 뿐만이 아니다. 지난 6일에는 전경련 조건호 상근 부회장을 비롯해 효성 조석래 회장, 대림 이준용 회장, 삼환 최용권 회장 등이 비공식 모임을 갖고 김 부회장 사퇴 등에 대한 대책 마련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중견 기업 회장들은 "전경련이 이대로는 안된다", "25일 강 회장 연임 추대 명단에서 빠지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전경련 관계자는 이 비공식 모임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차기 회장 선출과 관련해 의견을 모으는 작업의 하나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자 기사에서 이준용 회장의 경우 회장단 회의에서도 강 회장의 재추대에 다른 의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이에 따르면 이 회장이 강 회장에게 "건강이 허락된다면 한 번 더 하시죠"라고 얘기하자 강 회장은 곧바로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대답했다. 반면 이 회장들 일부 중견기업 회장들은 총회까지(9일)는 시간이 있으므로 좀 더 심사숙고하자고 했다는 것. 특히 이 회장은 "아들과의 문제도 그렇고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니, 지금 꼭 결정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전경련이나 대림산업 내에서는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전경련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회장단 회의에서 어떤 말들이 나왔는지는 참석자들 외에는 전혀 모른다"면서 "회장들이 편하게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일절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림 비서실 관계자 역시 "회사의 공적인 내용 이외에 회장 개인적으로 참석한 자리에서 오간 말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얘기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부회장직 사퇴를 비롯한 일련의 상황이 강 회장 연임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특정 그룹이나 총수의 '입김'에 의해 독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이번 전경련 회장 선출을 둘러싼 잡음은 전경련 내 회원사 간의 미묘한 갈등이 드러난 사례라는 말이다.
전경련 위상 추락 이어져...차기 회장 불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