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송병승기자]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낙태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나라의 하나이다.
이 두 가지 ‘팩트’는 대한민국 사회가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 매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공동체는 이미 먼 옛날에 해체되었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노력은 제자리걸음을 걷는 사이 출산과 육아의 부담은 개인의 책임으로 고스란히 떠넘겨졌다.
그리고 여기에 ‘10대 미혼모’라는 길을 ‘선택(?)’한 아이들이 있다.
‘불법’이라지만 어디를 가나 손쉽게 낙태할 수 있는 이 나라에서 차마 태중의 생명을 지워버리는 방법을 선뜻 ‘선택’하지 못한 이 아이들.
그 중에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는 그나마 쉬운 길을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직접 키우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길을 선택한 아이들도 있다.
생명과 모성애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이 아이들에게 ‘성적으로 문란한 문제아’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외면하기에 급급한 대한민국 사회에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바친다.
김애숙 교사 “학생들 매우 밝고 착해서 놀라…낙천적이고 유대감 있다”
“지금은 잠시 발을 헛디뎠지만 잘 이겨내고 멋진 인생 살았으면 좋겠다”
6일 방문한 ‘홀트고운학교’에는 오전 대안 수업으로 북아트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소년 미혼모 학생들은 저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정성을 담아 종이를 오리고 그림을 그려 넣어 책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만든 책을 소개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또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미소와 함께 사뭇 진지함도 묻어났다.
점심식사 후 휴식시간에 학생들은 TV시청을 하거나 주변을 산책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이상 학생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기도 하다.
오후 수업의 정규 교과목은 국어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여느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과 마찬가지로 교재와 함께 진행됐다. 학생들의 나이가 다 다르기 때문에 평균적인 수업을 진행하지만 불평을 하는 학생은 없었다. 오히려 학년이 높은 학생은 자신이 아는 부분에 있어서는 더 어린 친구들에게 수업 내용을 알려주기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학생들에게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김애숙(54)씨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학생들이 다들 매우 밝고 착해서 놀랐다”면서 “학생들이 낙천적이고 서로 간에 유대감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사랑과 따듯함으로 격려해 준다”면서 “(이곳 학생들이)지금은 잠시 헛디뎠지만 잘 이겨내고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포동이’ 엄마. 주아의 이야기
열아홉 살 주아(가명)의 배속엔 7개월 된 태아가 자라고 있다. 아이 아빠가 포동포동하게 자라라고 해서 지어준 태명은 ‘포동이’다.
편부 가정에서 자란 주아는 교회를 다니던 친동생이 교회 어른들에게 자문을 구해 이곳 ‘홀트고운학교’를 알아냈고 입학하게 됐다.
고등학교 삼학년인 주아는 다행히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홀트고운학교 생활을 출석으로 인정해 주어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에도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 학교와의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에 다니던 학교는 이미지상 좋지 않다며 자퇴를 권유했지만 ‘홀트고운학교’의 설득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2월에 이곳에 입학한 주아는 매우 즐겁게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가끔은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있는 이곳 생활이 하루하루를 더 보람차게 보낼 수 있게 만든다.
주아는 쉬는 시간이 되면 자주 양육방으로 향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애기를 낳는 것보다 먼저 낳은 언니들의 경험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더 수월하게 출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태어난 애기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예쁘고 귀여울까’라는 생각과 함께 ‘포동이’를 떠올리기도 한다.
주아의 꿈은 스타일리스트다. 평범한 친구들은 고3 수험 기간 동안 대학을 생각하며 꿈을 위해 도전하겠지만 주아는 대학을 진학할 생각이 아직 없다. 출산 후 양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은 생계를 위한 직업을 찾을 예정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언젠가는 다시 도전을 해 나갈 예정이다. 태어날 ‘포동이’와 주아의 잃지 않은 꿈. 그것이 있기에 주아의 미래는 희망과 함께한다.
‘북아트’를 좋아하는 16세 소녀.
3월에 입학한 진주는 현재 임신 9개월째이다. 다음 달이 산달이기에 힘들만도 하지만 여느 중학교 3학년의 여학생처럼 밝은 소녀의 모습인 진주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다시 가고 싶기도 해요. 근데 교복이 터질지도 몰라요. 그럼 진짜 웃길 것 같아요.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서 입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다행히 진주의 부모님은 진주가 ‘홀트고운학교’에 다니는 것을 이해해 주신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역시 출석을 인정해 주고 있다.
“북아트 수업시간이 제일 좋아요. 책 만드는 게 재밌어요. 공강 시간에는 놀러도 다니고 여럿이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하죠”
소녀가 숙녀가 되어가는 시기.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살고 있지만 진주에게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인 진주에게 남아 있는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애기 아빠가 저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했어요. 애기 아빠 미니홈피에 가보니 자기는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마음이 아팠어요”
‘가온’ 세상의 중심이 되길…
2월 13일 1시 35분. 18세 미옥(가명)은 그 날, 그 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 자신의 아이인 ‘가온’이가 태어난 때이기 때문이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조금 어릴 뿐 미옥 역시도 한 아이의 어머니다.
“세상의 중심이 되라고 이름을 ‘가온’이라고 지었어요” ‘가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옥의 아이는 안타깝게도 입양을 보내 미옥과 함께하지 못한다. 미옥이 한때 골프를 치고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체질이라서 그런지 아이도 30분 만에 순산했다.
현재는 몸을 추스르면서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다. 아직 몸이 완벽히 돌아온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정규교과와 함께 밸리댄스 등을 배우며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미옥과 진주는 유독 친하다. 미옥은 진주를 보면 친동생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한다. 손수 동생을 키워서 그런지 함께 있는 진주가 마치 친동생 같다.
복학을 앞두고 있는 미옥은 요즘 학교로 돌아간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먼저 돌아간 친구들은 학교가 재밌다면서 자랑한다.
미옥은 요즘 얼마 남지 않은 이곳 생활에 대한 아쉬움과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한편 홀트고운학교 명은주 원장은 “청소년 미혼모 학생들을 탈학교 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만큼 이들의 재기를 위해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며, “힘든 상황에서 이곳 학생들이 잘 지내주는 것에 매우 고맙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