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자 가족, 눈물어린 사연 공개…잘 갔다 ‘오라고’ 했잖아
“딸 모습 담긴 동영상 보고나니 마음만 더 아프다”
“좋은 곳으로 여행 가랬더니 아프간 봉사활동 떠나”
피랍자 어머니, “내가 대신가면 안되냐”
“아프간으로 가는 비자, 특급으로 내줄 수 없나요. 세계 방방곡곡에 가서 우리자식들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어요. 봉사하기 위해 아프간으로 떠난 애들인데 그냥 이대로 죽어가도록 둘 순 없잖아요. 내가 대신이라도 들어가 있고 싶어요.”한지영(34.여)씨의 어머니 김택경(62)씨는 같은 날(7월31일) 새벽에 전해진 故 심성민씨 살해 소식의 충격으로 몸이 마비되는 바람에 휠체어에 링거를 꽂은 채로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김씨는 평소 대안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장애인 재단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딸이 그저 대견하고 예뻤다. 그랬던 김씨도 딸이 아프간으로 봉사활동을 간다고 했을 때 “여름도 많이 타고 저혈압도 있는 애가 어딜 가냐”며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기쁜 맘으로 봉사하러 가는데 그 정도쯤은 이겨낼 수 있다는 딸의 말에 김씨는 ‘딸이 나보다 낫구나’하는 생각에 대견스러워 믿고 허락했다. 김씨는 딸의 피랍소식에 ‘순수한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떠난 이들인데 신이 있다면 도와주겠지’ ‘이렇게 끝나진 않겠지’ ‘전 세계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텨왔단다. 또 그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딸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는 순간 살아있는 것에 감사했지만 가슴이 미어져 안 보느니만 못했다”며 애타는 심정을 전달했다.두 남매 보낸 아버지 ‘조마조마’
피랍자 서명화(29.여), 서경석(27.남) 두 남매의 아버지인 서정배(58)씨는 “옥수수가루와 우유를 배급받아 먹던 힘든 기억이 있기에 두 남매를 아프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며 “우리 돈 1천원이면 아프간 아이들이 하루를 살 수 있다는데, 내가 못하는 봉사를 아이들이 한다고 나서 흔쾌히 허락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명화씨가 병원과 유치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눈이 동그랗고 까만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도와주러 간다”기에 아프간 행을 막지 않았다. 또 미용 공부를 하는 아들은 “그곳 주민과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친구가 돼주기 위해 떠난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 혼자 못하는 일이라 교회에서 함께 간 것이다. 아이들을 나무라지 말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국민들에게 부탁했다.“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
이지영(36.여)씨의 오빠 종환(38)씨는 “동생은 그간 인도, 파티스탄 등 여러 국가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이번엔 내란을 겪고 있는 아프간에 간다고 해 말렸다”고 밝혔다. 오지의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온 그녀는 처음 보는 물건을 배우려는 아이들의 열망어린 표정이 선하다며, 작년에 못 갔으니 올해는 꼭 가겠다고 고집했다.건강히 잘 갔다 오라며 인사는 했지만 내키지 않았던 봉사활동을 보낸 종환씨는 “피랍된 지 벌써 13일이나 지났다는 게 꿈만 같다”며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어 “동생은 무서운 곳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는데 나는 때 되면 배고프다고 밥 먹고 자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며 “오빠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울먹였다.“살려 논 다음에 혼내라”
31일 오후 5시 4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피랍가족 대책본부. 취재진 앞에 선 20여명의 피랍자 가족들은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연신 훔쳐냈다. 피랍가족 모임은 이 날 호소문을 통해 “이제 남은 21명조차 살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태”라며 “정부가 아프간 정부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 지금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눈물로 애원했다. 또 “피랍자들의 안전을 위해 무력이 아닌 평화적이고 인도적인 방법으로 남은 이들을 구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날 새벽 사랑하는 아들의 사망소식을 접한 故심성민씨의 아버지 심진표(62.경남도의원)씨는 남아 있는 피랍인들에게 “무사히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꼭 명심하라”며 “그러기 위해선 우선 건강관리를 잘하고, 자신의 주관이 있더라도 풀려나기 위해선 자신의 신념도 굽힐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위험지역에 간 본인들 잘못이니까 알아서 해결하라’는 사람들에게 “우선 사람을 살려놓고 그 다음에 채찍질하는 것이 옳다”고 전했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