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닷컴] 대선을 코 앞에 두고 "BBK라는 투자자문 회사를 내가 설립했다"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2000년 10월 광운대 강연 내용이 담긴 90분짜리 동영상이 공개돼 '이명박 독주의' 대선 판도가 뒤흔들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BBK 지분 실제 소유 문제에 대해 '이명박 무혐의'라는 발표를 통해 이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힘을 실어줬지만 동영상에서 이 후보가 직접 '금년(2000년) 1월 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하기로 생각을 해서 지금 정부에 제출을 해서 이제 며칠 전에 예비허가 나왔다"고 말해, 이 후보를 비롯해 검찰의 도덕성 문제 또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의 발언은 회사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정확한 표현'이라며 애써 담담한 표정이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동영상 공개를 계기로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린 현 대선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의 '동영상' 실체보다는, 'BBK를 자신이 직접 설립했다'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 CD가 있다고 주장하며 한나라당을 협박해 거액을 뜯어내려 한 혐의(공갈 등)로 김모(54)씨 등 3명이 경찰에 붙잡힌 점을 강조 중이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돈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기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16일 브리핑을 통해 "공갈범들이 내놓은 동영상에 나온 내용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없었다. 한나라당은 공갈범들이 돈을 요구하며 공갈하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바로 112로 신고하여 협박범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박 대변인은 "(동영상은) 새로운 금융회사 모델인 LKeBank에 대해 홍보하는 과정에서 영업상 관련을 갖고 있는 동업자 회사에 대해 포괄적으로 설명한 것일 뿐"이라면서 "(이 후보의 발언은) 동업자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정확한 표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박 대변인은 또 "검찰에서도 이 대목은 이미 철저히 수사를 해서 발표한 바 있다"고 지적한 뒤 "수많은 계좌 추적과 참고인 조사를 통해 밝혀진 실체적 진실, BBK는 이명박 후보의 소유가 아니라는 실체적 진실은 바뀔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한발 나아가 "정동영 후보와 정봉주 의원, 그리고 신당 관계자들이 협박범들과 거래하고 공모했는지 역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면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대선 막판까지 공갈범까지 이용해 네거티브 공세에 매달리는 신당과 이회창 후보측이 딱할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앞서 이날 새벽 "김씨 등이 협박에 사용했던 CD 복사본을 입수했다"며 동영상 내용을 요약한 A4용지 2장 분량의 요약문을 언론사에 보도자료로 배포했고, 오전 9시께 국회에서 해당 동영상을 공개해 대선을 3일 앞둔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한나라당 공보담당 김정훈 원내부대표는 '대통합민주신당은 쇼를 그만하라'는 제하의 개인 논평에서 "못먹는 밥 재 뿌리기에 나선 신당이 마지막으로 어떤 쇼를 할까 궁금했는데 실망스럽게도 또 BBK관련 쇼"라면서 "BBK사건의 진실은 이미 분명히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김정훈 부대표는 "신당도 약 1년 전부터 BBK사건을 주장해 오면서 진실을 밝힐 중요한 순간이 여러번 있었음에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던 진위 불명의 동영상을 검증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이때 공개하고 있다"면서 "그 의도가 무엇인가. 또 다시 국민을 호도하려하는가"라고 되물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도 이날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명박) 후보와 통화했는데 그날 광운대학교에서 강연을 한 것은 맞지만, (이 후보가 강연) 내용은 기억 못하고 있다"면서 "(이 후보가) 과연 그 내용대로 강연했는지의 여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의 이명박 후보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 검찰은 "동영상 내용을 검토했지만 수사 결과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5천900여개의 복구된 컴퓨터 파일, 자금추적 결과, 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BBK투자자문이란 회사는 1999년 4월 김경준씨가 단독으로 설립해 계속 운영해 온 점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상태"라면서 "사업을 연계하려고 증권업 예비허가를 받던 단계여서 표현의 뉘앙스 차이는 있다"고 말해, 사실상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다.
한나라당의 '해명'과 검찰의 이 같은 '입장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은 거세다.
대통합민주신당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저렇게 후안무치하고 철면피한 사람이 집권하게 되면 둘 중의 하나다"면서 "강력한 폭압통치를 해서 '파쇼'로 가던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퇴하던가 둘 중의 하나인데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전자로 갈 가능성이 많다"고 맹비난했다.그는 "(동영상) 사안을 보면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결국 민주주의 세력과 '민간파쇼' 세력의 대혈전이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영상이 뉴스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 국민들의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농성장을 지켜야 하지만 중진 의원들은 오늘 언론사를 방문해서 반드시 동영상이 (오늘) 방송에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무소속 이회창 대선 후보 이날 오후 2시께 남대문로 단암빌딩 3층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은 그동안의 잘못을 시인하고 지금 당장 이명박 후보를 출국금지하고 BBK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 측 김정술 변호사는 동영상 CD에 대해 제보받았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그동안) 우리 국민이 최면술에 걸린 것 같았는데 이 일로 인해 최면 상태에서 깨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패정치세력 집권저지와 민주대연합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대통합민주신당 정치검찰-이명박 유착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박 후보가 스스로 BBK를 자기가 설립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이 또한 조작이라고 할 것이냐, 위조라고 할 것이냐"고 따진 뒤, "이명박 후보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면서 즉각적인 대통령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명박 후보가 저지른 BBK 주가조작의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면서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오보요 위조라고 주장해 왔던 그의 거짓말은 이로써 끝장났다. '대통령이 되더라도 BBK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직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했던 그 공언처럼 이제 이명박 후보는 모든 책임을 지고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통령후보의 거짓말은 그 자체로 나라의 수치이자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나아가 "검찰이 저지른 진실 은폐와 조작수사의 실체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제 검찰은 부패한 권력과 야합하여 진실을 생매장하려 했던 자신의 범죄적 행위를 자백하고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당선저지를 위한 범개혁진영의 대통령후보 단일화 촉구를 위한 1천만 유권자 서명운동 연대 역시 성명에서 "이 후보가 2000년 광운대에서 BBK를 자기가 설립했음을 강연한 내용이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유포되었다"면서 "이에 검찰은 저간의 수사결과에 이 동영상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을 밝혀 세간의 이명박 경호실장이라는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정치검찰로 치닫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비꼬았다.
이들은 "불법이냐 아니냐는 실체적 진실발견 의무에 충실한 검찰의 철저한 재수사에 의해 명명백백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수사에 착수하지도 않고 도덕성의 문제로 몰고 갈 수 있단 말인가"라면서 "이것이 이명박 경호실장이 되기를 자처하고 검찰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작태임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정통보수 논객으로 잘 알려진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도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 '조갑제닷컴'에 글을 올려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동영상에 대한 명쾌한 설명 없이는 당선된 뒤가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다"면서 "대통령 당선 즉시 정직성 시비에 휘말려 무력화되어 버리면 북핵 문제 등으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은 난파할지도 모른다. 이제 이명박 후보가 진실을 밝힐 차례이다. 검찰 뒤에 숨지 말고 국민 앞으로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장춘 전 유엔대사는 "이명박 후보의 육성과 동영상이 오늘 아침에 공개되었다. 이로써 이명박 후보는 사실상 유고(有故)가 되었다"고 전제한 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한국의 국민들은 12월 19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그 결과를 보이콧(boycott)할 것이다. 이명박 후보를 절대로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BBK 사건이 결국 터져 버렸다. 이러한 폭발물을 방치한 곳은 한나라당과 이명박이다. BBK과 한나라당은 나라를 이같은 위기로 몰고 가려고 할 것"이라면서 "검찰도 BBK 거짓 사건임을 알면서 엉터리 발표한 이유를 모르겠다. 검찰보다 국민의 생각이 더 정확했다"는 내용의 글을 각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리고 있다.
한 네티즌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을 너무 많이 속이고 있다. 이명박이 지배하는 여론은 국민을 속인 결과"라면서 "이명박은 BBK 말고도 많은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과거 어떤 대선후보가 이렇게 추잡한 사건과 연루 된 사실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여명의 눈동자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이명박 후보의 강연을 당시 보고 들었던 학생들과 그리고 교수들은 대한민국이 온통 BBK 사건으로 난리가 아닌데도 왜 침묵하고 있을까"라면서 "지금이 독재시절도 아니고 엄연히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인데도 침묵을 지키니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대들이 침묵을 하고 있느라고 얼마나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까"라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청와대는 이명박 후보의 광운대 강연 동영상과 관련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검찰의 재수사가 필요한지 신중하게 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후보의 동영상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BBK 동영상이 터져나와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해진 가운데 대선을 사흘 앞둔 16일 밤 중앙선관위 주최로 마지막 TV 토론이 열릴 예정이어서,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로 꼽히는 경제 문제를 비롯, BBK 동영상 실체를 중심으로 한 후보들간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알려진 바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거짓이 드러나 대통령으로서 무자격인 까닭에 '국민이 심판해달라'는 메시지를 강조할 예정이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검찰 수사로 BBK 의혹이 사라졌기 때문에 '준비된 경제지도자'의 이미지를 거듭 강조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