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진경락(구속기소)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문건 내용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나치 시대를 방불케 한다”고 성토했고, 시민단체들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민간인 불법사찰 친위조직의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 공개 파문
총리 직할로 위장하고 ‘특명사항’은 BH 비선 통해 관리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은 최근 김경동 전 총리실 주무관의 USB에서 2008년 작성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제목의 문건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립된 목적은 ‘노무현 정권 코드인사들의 음성적 저항과 일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해 VIP의 국정수행에 차질을 빚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있다.
지휘체계는 ‘VIP에게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한다’고 돼있다. 일반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국무총리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대신 특명사항은 VIP에게 절대 충성하는 비선에서 지휘한다고 적혀 있다.
특히 VIP보고에 대해 ‘공직윤리지원관-BH(청와대) 비선-VIP(또는 대통령 실장)’이라고 나와 있어 대통령이 실제로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 코드 인사들의 퇴출 내용도 문건에 적시돼있다. ‘전 정권 말기에 대못질한 코드인사 중 MB 정책기조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인사에게 사표제출 유도’, ‘2008년 9월 현재 퇴출 대상 공기업 임원은 39명에 이른다’고 적혀있다.
민주당 “나치 시대 방불”민주통합당은 17일 해당 문건 내용을 확인한 뒤 “나치 시대를 방불케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석현 국기문란사건조사특위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원내대표단 연석회의에서 “문건을 읽어보면 나치 시대에 살고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곳곳에 충성이 등장한다. 내용이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이석현 위원장은 “VIP 의중, VIP께 일심 충성. 절대 충성 친위조직 등 충성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며 “여기서 VIP는 대통령이고 대통령께 보고한다고 지원관실이 문건을 만든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 몸통”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이게 민주주의 시대에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가히 충격적”이라며,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의 주범이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종범인데 종범만 처벌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통령이 아니면 말할 사람이 없다. 대통령이 직접 이 내용을 말하고 법적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하면서 검찰 수사가 말단 실행조직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이 위원장은 “이영호 전 비서관이나 박영준 전 총리실 차장을 처벌했지만 권재진 민정수석은 손도 못 댄 채 대통령 언저리에도 못가고 있다”며 “문건까지 나왔는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야한다. 정권 바뀌면 홍두깨로 때릴 것을 회초리질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SLS 등 구명로비조사소위 위원장인 이춘석 의원도 “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할 때도 민주당은 대통령을 보호하러간다고 비판했었다”면서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청와대와 검찰을 압박했다.
이춘석 의원은 “민간인 불법사찰의 직접적인 조사대상인 권재진 장관이 사퇴하지 않는 한 진실은 안 밝혀질 것”이라며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권재진 장관이 즉각 사퇴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한 “더 기가 막힌 것은 조사 대상인 권 장관이 6월에 검찰 정기 인사를 단행하려한다는 점”이라며 “만일 권 장관이 검찰 인사를 하게 된다면 청와대에 아부하는 검사만 승진시킬 것이다. 6월 인사 때는 새 장관이 정기인사를 해야 한다. 민주당은 권 장관의 사퇴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MB가 직접 밝혀라”
시민단체들이 모여 결성된 ‘민간인불법사찰 은폐 의혹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비상행동(비상행동)’은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민간인 불법사찰 친위조직의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비상행동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하거나 사찰결과를 보고받았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정부문건이 공개됐다”며 “드러난 민간인 불법사찰 사례를 보면 비선 친위조직이 처음부터 공직자와 민간인, 합법과 불법을 구분하지 않고 사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비상행동은 “목적은 공직기강 확립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정치공작을 위한 표적사찰이었다”며,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것은 어설픈 명분이며 더 이상 대통령의 침묵을 수긍할 국민은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불법사찰에 연루됐다면 ‘버티기’로 시간을 끈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비상행동은 ▲검찰은 정정길·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과 이강덕 해양경찰청장 등 핵심 관련자 소환 조사 ▲검찰수사 독립을 위한 권재진 법무장관 사퇴 ▲19대 국회에서 국정조사와 청문회 실시 등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주민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은 “불법성을 피하기 위해 외향을 총리실에 두자고 한 것을 최근 공개된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보여준 것처럼 증거은폐를 이어간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끝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영준 노동자 연대 다함께 운영위원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이 터졌을 때 이를 비난했지만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김종태와 김혜선을 지난 총선에서 공천한 것을 보면 같은 몸통의 일부라는 것을 드러낸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행위예술가로 잘 알려진 낸시랭은 연예인을 포함 민간인 사찰 뉴스에 대해 “BH~ BH~ 난 북한인지 아랐자나! 그런데 왜 저는 사찰 안 하는거죠? 나 무시하는 거야? ~~~~앙~~~~~~!”이라고 풍자한 바 있다.
한 네티즌은 이번에 드러난 사찰 관련 문건에 포함된 “VIP께 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이라는 표현이 노무현 정부 시절 드러났던 ‘일심회 간첩 사건(민노당 일부 당직자가 당 내부 정보를 북한에 갖다 바친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