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가벼운 규제해소만...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않아
양적 스코어만 자랑 누구를 위한 규제샌드박스인가
[매일일보 이승익 기자]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경제사상가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명저 《시빌라이제이션》에서 종이, 화약, 물시계, 성냥, 자석 나침반, 놀이용 카드, 칫솔, 일륜차 등 상당수 물건이 중국에서 발명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한 골프도 중국 송나라(960~1279년) 기록을 보면 ‘추환’(捶丸)이 먼저 시작된 거라고 봤다. 경기에 쓰이는 열 개의 클럽 중 쿠안방, 푸방, 샤오방 등은 오늘날 골프 경기에 등장하는 드라이브, 2번, 3번 우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농업에 있어서도 중국은 유럽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았다.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0.4헥타르만 있으면 한 가족이 먼저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영국은 한 가족이 먹고 사는데 거의 8헥타르의 토지가 필요했다. 그랬던 동·서양의 기술력이 완전히 뒤바뀐 것도 모자라, 동양이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아이러니하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이유를 ‘경쟁’으로 봤다. 중국은 중앙집권 형태로 국가가 운영됐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국가가 어우러진 서양에 비해 경쟁이 덜했다.
거대한 만리장성을 쌓아 외세를 막으려고만 했을 뿐 정작 내부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지 못했다. 반면 서양은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전까지 무수히 이합집산을 반복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이 제국주의로 탈바꿈한 이유는 이성을 중시하는 방식의 학문 경향으로 탈바꿈해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 중 38%가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 사이에서 나왔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선입견은 사고를 더디게 만든다. 그리고 사고의 더뎌짐은 기술의 퇴보를 의미한다.
◆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규제개혁
지난주 과기부에서 규제샌드박스 6차 심의결과를 발표했다. 중기부,산자부,과기부,금융위 등 모든 기업 관계 부처들이 너도나도 경쟁하며 전광판식 스코어 방식 성과를 경쟁하고 있다. 지난주 과기정통부는 올 1월부터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총 102건 과제를 접수받아 78건을 처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의 목표치가 100개라고 하니 과기부의 이같은 실적은 과히 자랑할 만한 수치다. 해당 부처의 실무자와 부처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 박수를 칠 만 하다. 들어온 규제건수가 많다 보니 이같은 고충을 풀려는 이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한 대목이다.양적 스코어만 자랑 누구를 위한 규제샌드박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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