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 조합원들은 기자회견을 시작하기에 앞서 축하해주러 온 손님들 및 기자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씩을 대접했다. 커피를 나눠주는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과 유흥희 분회장의 표정이 밝았다. 이날따라 기자들도 많이 찾아와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현장복귀를 알리기 위해 준비한 보도자료도 모두 동이나 모자라기까지 했다.
노사문제 사회적 합의 표본
지난 2005년 7월 기륭전자(현 기륭이앤이)에서 해고됐던 일부 비정규직 파견근로자들이 8년 6개월 만에 일터로 돌아갔다. 기륭전자는 2010년 11월1일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한지 1895일만에 합의를 하고 국회에서 조인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상급 노조는 물론 종교, 예술계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가 힘을 보탰다.
당초 합의로는 1년 6개월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2년 5월1일 복귀했어야 하나, 사측에서 생산시설이 준비되지 않고 회사 경영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면서 노사 교섭을 통해 1년이 다시 유예돼 2013년 5월 1일자로 복귀가 이루어졌고 이날이 첫 출근이었다.
지난해 대선에 노동계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김소연 기륭전자 전 분회장은 이날 “복귀소감이 어떠냐는 질문들에 어제까진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회사가 우리 조합원들과의 마지막 교섭에서 부서배치를 해주고 ‘같이 한번 일해봅시다’라고 말했다면 정말 기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밝혔다.
하지만 김소연 전 분회장은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의 ‘회사가 너무 어렵다 여러분들이 들어와도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에 조합원들 마음이 무너졌지만 우리는 현장으로 돌아가 함께 살맛나는 일터를 만들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전 분회장은 “기륭전자 노사간의 합의는 개별노사간의 합의를 넘어 사회적 합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국회에서 조인식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불법파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륭투쟁을 시작했다”는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은 “6년의 투쟁, 2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기륭전자 노동조합을 세웠을 때에 그 설렘과도 비슷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유흥희 분회장은 “현재 기륭전자가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니어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지만 오히려 저희는 동지들이 보내주시는 이 꽃다발 속에서 또 많은 취재진들 속에서 또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고 말했다.
“행복한 사회 만들었으면”
유 분회장은 “기륭전자에 들어간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가슴이 메어지고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며 “기륭전자도 회사를 잘 키워서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본인들이 해야 할 분명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고 강조했다.
오석순 조합원은 “너무 행복하고 기륭조합원들 모두 잘할 거라고 믿는다”며 “(축하해주러 온) 쌍용차 동지들과 재능교육 동지들도 얼른 힘내고 함께 투쟁해서 정리해고 문제, 특수고용 문제를 해결해 노동자들이 정말 행복한 사회를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형란 조합원은 “우리 조합원들이 가슴에 맺힌 것이 많아도 (겉으론) 껄껄 웃고 다니는 것을 느꼈다”며 “회사가 풍지박산이 나고 하는 것을 보고도 연대하는 동지들이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싸워주었기 때문에 더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조합원은 “9년 가까이 함께 싸워준 동지들에게 고맙다”며 “우리 아이가 ‘엄마 복직해?’라며 묻는 말에 차마 대답을 못했다. 한창 직장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애들한테 후회가 되지 않게끔 말하고 싶다. 그동안 참고 견디면서 투쟁했던 게 허무하게 지나가지 않도록 일 하겠다”고 울먹였다.
한편 김소연 전 분회장은 “사실을 불법파견 인정을 받고도 6년을 싸워야 했던 기룡투쟁은 법에서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며 “현대차의 경우 이겨도 바뀌지 않았다. 법에 의해서 바뀔 수 없다. 결국은 세상을 바꾸어야 하고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분회장은 “그런 마음 때문에 투쟁 한번 해보려고 대통령 후보로 나가기도 했다”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나의 개인적인 삶만 바꾸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함께 바꾸겠다는 결의를 모아서 정말로 우리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세상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복귀 기자회견을 마친 조합원들은 여러 사람들이 건넨 축하의 꽃다발을 들고 9시 20분경 다시 회사 안으로 돌아갔다. 막내 조합원 한명이 정규 출근시간을 조금 넘긴 것에 대해 “3천원(시급의 1/3)을 까라”는 어느 조합원의 힘찬 농담이 귓가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