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사인한 복직합의서도 ‘휴지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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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사인한 복직합의서도 ‘휴지조각’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7.20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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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학습지 교사 김진찬씨, 한솔교육 불매운동 나서

해고노동자 원직복직 합의 불이행…불매운동으로 이어져
약속시한 지난 지 벌써 8개월째…시민단체 발 벗고 나서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김진찬(35)씨는 주말을 제외한 매일 아침, 커다란 스피커를 지붕에 매달은 차량을 타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해 있는 KGIT센터로 향한다. 그가 그곳을 찾은 진짜 목적은 KGIT센터 19층부터 21층에 입주해 있는 (주)한솔교육(회장 변재용)에 있었지만 차마 그곳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김씨는 KGIT센터 인근 도로변에 주차를 시키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준비한다. 이내 곧 차량의 모든 유리창에는 각종 구호가 적힌 피켓이 배치되고 외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민중가요가 울려 퍼진다. 차 밖으로 나온 김씨는 ‘한솔교육 변재용은 거짓말로 시간만 끌지 말고 차라리 죽여라’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목에 걸고 출근길에 오른 한솔교육 직원들을 향해 섰다. 김씨의 ‘상암동 일상’이 반복된 지도 어느덧 8개월째로 접어들었다.

김진찬씨는 2007년 2월말까지 한솔교육의 독서토론 논술상품인 ‘주니어 플라톤’ 학습지에서 교수로 근무하던 노동자였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몸담았던 한솔교육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지난 18일부터는 민주노총서울본부 서부지구협의회 등 13개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 한솔교육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해고노동자 김진찬씨가 비바람에 맞선 이유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지난 14일 오전, 이날도 김씨는 변함없이 피켓을 들고 출근투쟁에 나섰다.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 정도의 강풍 속에서 김씨는 원직복직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 한솔교육 해고노동자 김진찬씨는 8개월을 하루같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솔교육 본사 앞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던 한솔교육 해고노동자 중 현재까지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은 저 한 명뿐 입니다. 그래도 제가 전개하고 있는 이 싸움이 사측에 위협적이진 않아도 무시될만한 사안으로 치부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억울하게 해고당한 게 아니고, 또 원직복직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면 벌써 포기했겠죠. 이길 때까지 해볼 거예요. 이기게 돼 있습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학습지산업노조에 따르면 2006년 한솔교육 학습지 교사로 입사한 김씨는 근무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부정업무 의혹, 고객만족도 저조, 실적저조 등이 계약해지 사유였다. 그러나 학습지노조 등은 “한솔교육에 ‘바른말’하는 김진찬씨를 솎아내기 위해 사실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사유를 갖다 붙여 재계약을 4일 앞두고 해고통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와 관련 김씨는 “재계약을 약 두 달 가량 앞둔 1월, 직원 간담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회사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해 회사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적이 있다”며 “또 2월에는 입사당시부터 활동하던 전국학습지노조 대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그 사실이 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눈 밖에 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와 분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인물을 조기에 발견, 처리(?)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계약해지 통지 이후 김진찬씨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던 한솔교육 옛 본사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집회를 여는 등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싸움을 이어갔다. 전국학습지노조 조합원들과 24시간 차량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한솔교육은 6개월간의 자회사 근무를 조건으로 김씨에 대한 복직에 합의했다. 그런데 ‘6개월간 자회사에서 업무를 해보고 그곳에서 자질이 검증되면 복직을 시켜주겠다’는 조금은 이상한 합의안이었다. 그런데 6개월 후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합의사항을 파기했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한솔교육의 자회사인 에듀베이스 기획팀에서 일했고, 업무평가도 좋게 받았지만 주니어플라톤 교사로 복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솔교육이 지난해 11월11일 학습지노조 사무실로 ‘김진찬씨의 에듀베이스에서의 업무에 매우 만족하며 플라톤 지도교사 보다는 사무직으로 에듀베이스에서 근무하면서 기획업무를 계속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 물론 학습지 교사보다 자회사에서의 임금 처우가 훨씬 좋았다. 하지만 당초 요구해왔던 ‘원직복직’이 아니었기에 김씨는 자회사에 사표를 내고 학습지 교사로의 복직투쟁을 지금까지 전개해오고 있다. 김씨는 “애초부터 돈이 목적이었다면 학습지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보람과 자아실현의 삶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한 직업이다”고 말했다.김씨는 이어 “사실 사측이 합의를 파기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며 “한솔교육은 2007년부터 주식상장을 위해 기업공개 준비 중이었는데 노조 문제로 시끄러우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이 될 것을 우려해 일단 합의서를 작성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경제위기 등으로 상장을 포기하면서 합의서를 이행할 필요가 없어져 파기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불매운동 위기탈출 해법은?

▲ 민주노총서울본부 서부지구협의회 등 13개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솔교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솔교육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하지만 한솔교육측은 애당초 김씨에게 주니어 플라톤 학습지 교사로의 복직을 약속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약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그게 교사로의 복직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

실제로 당시 합의문에는 ‘㈜한솔교육은 기 계약 만료된 김진찬에 대하여 6개월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여 자질을 확인한 뒤 재계약을 체결한다’고 적혀있을 뿐 어느 회사와 재계약을 체결하는 것인지에 대해 명시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김씨는 “합의문에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구두상으로 학습지 교사로 복직해 줄 것을 약속했다”며 “이렇게 발뺌할 줄 알았다면 사측과 합의를 맺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와 관련 한솔교육 관계자는 “내부조사결과 김진찬씨가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계약해지를 했는데 어떻게 다시 교사로 복직을 시켜주겠느냐”며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입장에서 교사복직은 절대 안 될 말”이라고 전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자리를 주려고 노력했고 또 그곳에서 업무수행능력도 인정받아 정규직전환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며 “최대한 배려했지만 본인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는 등 기회를 저버렸다”고 말했다.한편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부지구협의회 등은 사측에 “책임 있는 해법을 가지고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하며 지난 18일부터 한솔교육 불매 서명운동과 규탄집회를 벌이는 등 강경투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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