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도 기업이미지 실추 걱정…조속 수습 희망
두산그룹 박용만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오너 형제들 사이의 경영권 다툼이 상호 폭로전 등 진흙탕 싸움으로 치달으면서 두산그룹 임직원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두 형제 진영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폭로전을 벌이는데다 검찰 수사까지 겹쳐 있어 그 파장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다툼이 더 과격해지고 장기화될 경우 브랜드 이미지 저하와 신인도 급전직하 등의 큰 후유증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두산그룹 임직원들은 사태추이를 숨죽인 채 지켜보면서 조속하고 원만한 해결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박용오 전회장이 박용성 회장 등의 비자금 조성을 폭로하고 검찰에 고발한 이후 형제들의 경영권 다툼은 갈수록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일 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두산산업개발 신용등급 하향조정 문제를 검토중”이라고 밝힌 것이 그 신호탄이다.
당장 신용등급을 깎아내리지는 않으면서도 형제간 싸움이 격화될 경우 강등시킬 수 밖에 없음을 경고한 것이다.
이틀 전 두산산업개발이 2800억원 규모의 과거 분식회계 사실을 ·고백‘한 데 뒤이어 나온 것이다.
두산산업개발의 과거 분식회계가 드러남에 따라 부채비율이 650%까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어 두산그룹 오너 일가의 유상증자 대금 대출이자를 회사가 대납했다는 의혹이 박용오 전회장쪽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박용성 현회장이 과거 분식회계 고백으로 박용오 전회장에 반격하자 박 전회장쪽에서 대출이자 대납의혹으로 재반격에 나선 것이다.
또 오너들이 분식회계로 흑자기업이 된 두산산업개발의 배당금 53억5000만원을 받은 것은 잘못이라거나 두산산업개발과 고려산업개발의 합병 비율도 엉터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이전투구 속에 투자가들의 반응도 냉담해져 두산산업개발 주가는 박 전회장이 검찰에 투서를 낸 이후 10% 가량 하락했다.
이같은 사태는 앞으로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두형제 진영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경영권 다툼도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방이 무너질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듯한 태세다. 게다가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치명타가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두 형제간 폭로로 드러난 사실들만 해도 분식회계, 공금횡령, 배임 등의 혐의를 걸 수 있는 데다 수사진행에 따라 새로운 문제점이 추가될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분식회계 규모가 더 늘어난다든가, 세금포탈 등의 비리가 밝혀질 경우 회사로서는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박용오 전회장측은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의 비자금 조성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자료를 검찰에 추가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도 비자금 관련자를 추가로 출국금지시키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중이다.
검찰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수사대상 회사의 경리부 등 관계부서의 직원들은 관련 회계자료를 준비하는 등 검찰 소환에 대비하고 있다고 두산산업개발의 한 관계자는 밝혔다.
수사 결과 새로운 비리가 드러나면 관계자 형사처벌이나 추징금 부과 등의 조처가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두산 임직원들에게 더 큰 문제는 검찰 수사 결과 자체보다는 형제간 싸움의 장기화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와 신용도 실추 가능성이다.
오너형제 가운데 누군가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추징금 징수 등으로 끝나면 그대로 수용하고 후속대책만 확실하게 세우면 된다.
하지만 형제간 다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면 브랜드 이미지 실추와 신용도의 급전직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와 임직원들의 생존기반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게 됨을 의미한다.
한 직원은 “사태가 장기화되면 브랜드 이미지가 저하돼 아파트 분양이 잘 안되거나 신규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닥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영업에서는 아직 큰 문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담수화 플랜트 등 해외영업 전선에서는 국내 경쟁기업이 없기 때문에 아직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발전설비 부문도 사실상 국내독점이기 때문에 당분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도 형제간 싸움이 격화될 경우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대우그룹의 경우에도 해외에서 자금회수 압력이 먼저 들어왔었고, 현대그룹도 부실경영이 표면화되기 수개월 전부터 해외에서 경고음이 들려 왔다.
두산에 근무하는 임직원들로서는 이런 사태가 가장 곤란한 일이다.
현재의 경영권 다툼이 형제간 싸움에 그치지 않고 자칫 회사 존립을 흔들고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사태가 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김승연-호연 형제의 다툼 끝에 김승연 한화 회장이 구속까지 됐고, 현대그룹의 정몽구-몽헌 형제의 왕자의 난 결과 현대그룹은 사실상 부도사태에 빠지는 등 형제간 진흙탕 싸움의 끝은 언제나 불미스럽게 끝났다.
재계로서도 이런 사태까지 일어나지 않고 원만하게 수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전경련의 한 임원은 “대기업 총수와 그 가족들은 사회지도층이고 이들의 경영권 다툼으로 기업에 대한 전반적 이미지가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회사의 존립과 임직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상호양보로 원만하게 매듭을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데일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