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전승완 기자] 최근 온실 등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원격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디지털 농업이 확산하는 가운데, 노지에 있는 사과 과수원에도 디지털 농업 기술 적용이 첫발을 뗐다.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가지치기와 꽃따기, 약제 방제 등 사과 생산 과정에 자동화, 기계화 기술을 접목하고 재배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사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2021년 기준, 3만 4359ha)하는 과수작목이다. 한 해 생산량은 51만 5천 톤에 이르고, 연간 생산액은 약 1조 1천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가지치기와 꽃따기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모든 농작업을 사람 손에 의존하고 있어, 경영비가 많이 들고 대외 경쟁력이 낮다. 여기에 사과 주산지 대부분은 인구가 적고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시험 재배지(경북 군위)를 중심으로 3단계에 걸쳐 자동화, 기계화에 기반한 디지털 사과 과수원을 연구 중이다. 그리고 그 첫 단추로 무인 작물보호제 살포 장치를 개발하고, 가지치기와 꽃따기 기계화 기술의 실증을 마쳤다.
무인 자동 약제살포 시스템은 순수 국내 기술로써 농촌진흥청에서 지난 2018년 개발에 착수해, 2021년 특허출원했다. 이 시스템은 약제를 희석하는 통, 나무 아래 지면을 따라 약액이 수평으로 이동하는 관, 고압으로 약제를 뿌리는 관(노즐), 배관에 약제가 남아있지 않도록 하는 고압 공기 펌프, 그리고 기기를 조작하는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농업인은 과수원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도 집이나 과수원 외곽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병해충을 방제할 수 있다.
실험 결과, 기존의 고속 분무기(SS기)로는 1헥타르(ha)를 방제하는 데 평균 3~4시간이 걸렸다면, 무인 자동 약제살포장치로는 20∼30분 만에 전면 방제가 가능해 방제 시간을 약 8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
또한 기존 고속 분무기는 농업인이 비 옷 등을 입은 상태에서 농약에 노출된 채 운전하며 방제해야 하지만, 새 장치는 무인으로 구동돼 중독사고와 안전사고 위험에서 자유로운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농촌진흥청은 가지치기와 꽃따기, 잎 솎기 등의 기계화 기술도 실증을 마쳤다.
이는 각각의 목적에 맞는 농작업 기계를 별도 트랙터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나무의 축(큰 줄기)이 2개가 되게 하고, 나무 모양도 기존의 넓은 원뿔형이 아닌 매우 좁은 원뿔 형으로 바꿔, 트랙터 이동이 쉽고 기계 작업이 수월하도록 했다.
보통 겨울철 가지치기는 1헥타르(ha) 면적에서 7년생 이상 큰나무(성목) 기준으로 약 340시간(약 43일), 봄철 꽃과 열매솎기에는 약 506시간(63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계를 이용하면 동일 면적에서 각각의 작업이 4시간씩 총 8시간이 걸려, 가지치기와 꽃·열매솎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사과산업은 고령화와 일손 부족 등 사회 환경적 변화로 기반이 약화되는 상황이다. 이번 연구는 이런 변화의 앞선 대응으로 기계화, 자동화, 정보화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지속 가능한 사과산업의 활로를 찾았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부터 무인 자동 약제살포장치를 활용해 개화기 서리·냉해를 줄일 수 있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또한 기계를 이용한 가지치기와 꽃따기, 잎 솎기가 열매 품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아울러 신기술 보급사업 등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농가 보급형 미래 디지털 사과 과수원을 100곳으로 확산할 예정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이지원 원장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기계화·자동화·정보화를 통해 사과산업이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도록 준비하겠다”며 “이번에 소개한 기술뿐 아니라, 발아·개화·만개시기를 예측하는 생육모델링을 시작으로 봄철 서리·냉해 피해 예방, 여름철 더위 피해 예방 등 앞선 기술이 현장에 신속하게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