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반도체 겨울’ 속 韓 반도체 경쟁력 하락 중…2030년엔 중국에 밀린다는 전망도
[매일일보 여이레 기자]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이 발의 약 4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세액공제 폭이 여야의 초안보다 대폭 후퇴해 ‘반도체 겨울’을 맞는 우리 기업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국회는 최근 본회의에서 대기업의 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기존 6%에서 8%로 2%포인트 인상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중견·중소기업 세액공제율은 각각 8%와 16%로 이전과 동일하다.
하지만 29일 업계에 따르면 이는 야당안인 대기업 10%,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30% 감면보다 낮은 수준이다. 시설투자 세액공제 8%는 반도체 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경쟁국들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기획재정부는 세수 감소 우려가 큰 탓이라고 밝혔으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내건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이 무색하다.
미국은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해 25%의 세액 감면 혜택을 부여한다. 세액 공제 외에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보조금도 69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2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는 추가 세금 감면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로부터 6조원 이상 규모의 재산세를 감면 받을 예정이다.
중국은 반도체 기업의 공정 수준에 따라 법인 소득세를 50~100% 감면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반도체 산업에 1조위안(약 187조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만도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상향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2022년도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반도체 관련 예산에만 1조3000억엔(약 12조 3533억원)을 책정했다.
여당안 법안을 발의한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25%”라며 “미국 25%, 대만 25%, 중국은 무려 100%인데 8%짜리 한국이 경쟁력이 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첨단산업 시설투자 세액공제비율의 상향은 한국이 미래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고 산업 및 기업 성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국회와 정부가 단기적인 세수 감소효과에 매몰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라고 전했다.
실제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일본, 중국, 대만, 미국의 반도체 장비 투자액이 증가한 가운데 한국만 전 분기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14%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000억원가량 줄어든 누적 32조9632억원을 시설 투자에 집행했다. SK하이닉스는 내년도 신규 투자를 올해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일 예정이다.
내년 반도체 업황도 어둡다. 미중 반도체 공급망 분쟁 격화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경기침체 등으로 ‘반도체 겨울’은 상당 기간 이어질 기세다.
이 가운데 국내 반도체 경쟁력은 나날이 하락하고 있다. 산업연구원(KEIT)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종합 경쟁력은 71로, 미국(96)은 물론 대만(79)이나 일본(78), 중국(74)에 비해서도 뒤처진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우리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수년 내 중국에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SIA는 SMIC, 화훙반도체 등 중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2030년 전 세계 시장의 23%를 점유해 한국(19%)을 제치고 2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국민의힘 반도체 특위 민간위원과 반도체 관련 4대 학회는 지난 26일 성명서를 통해 “한국 반도체 미래가 없어졌다”라고 지적하며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 재인상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