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경렬 기자] 최근 서울시장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단독면담이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서 서울시장은 전장연에 대해 “전장연이 굉장히 사회적 강자”라고 말해 서울시가 장애인의 기본적 인권에 대해 얼마나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며, 해결은커녕 갈등만 심화시켰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강자일까? 강자라면 그렇게 사과를 많이 하는 강자는 없을 것이다. 휠체어 탑승 장애인은 휠체어를 위한 엘리베이터이지만, 타려고 할 때면 이미 탑승해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부터 하게 되고, 저상버스를 탈 때도 승객들에게 사과하게 된다. 발달장애인의 보호자는 집을 나서는 것부터가 곤욕이다. 반면,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로 판단(2021.11.24.자 21진정0539300결정)했던 발달장애인에게 부당하게 수갑을 채운 경찰은 사과하지 않았다. 한 매체에 따르면 해당 경찰은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사과 요구에 대해 “사과 강요는 경찰 인권침해”라며 거절했다.
우리도 길을 오고 가다 보면, 장애인 또는 그 보호자가 사과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지난해 방영 드라마였던 ‘일타스캔들’ 5화 내용이 단적인 예시다. 여자주인공의 남동생은 발달장애인이이었다. 남동생이 카페에서 스토커로 오해받았고, 카페 직원은 멱살을 잡았다. 이를 뿌리치다 폭행으로 수갑을 차고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여자주인공은 카페 직원들에게 남동생을 고소하지 말아달라며 연신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언뜻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장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카페 직원의 오해는 법률적 문제가 있다. 카페 사장이 직원들에게 직장 내 법정 교육인 장애인식 교육 등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탓이다. 먼저 멱살을 잡은 행위가 더 큰 폭행죄임에도, 장애인의 보호자가 오히려 사과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법리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달리 도망치지도 않은 발달장애인을 유치장에 가두고 수갑까지 채운 것은 앞서 말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사항에도 맞지 않는 경찰의 부당한 공권력 집행이다. 즉, 드라마의 장면과 달리 카페 직원과 경찰이 장애인과 그 보호자에게 사과하며 고소만은 하지 말라고 굽신거리는 것이 더 법과 원칙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이런 드라마의 장면을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사회를 그대로 유지시켜왔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필자는 퇴근시간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서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 비집고 들어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발을 밟거나 하지 않는 한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고, 거기 탑승해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의 권리 보호가 자신의 권리 보호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욕을 하거나 나가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단 장애인에 대해서는 달리 보는 것일까?
누군가 식당에 갔다고 가정해보자. 식당에서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었는데, 나에겐 수저가 제공되지 않아서 식당 주인에게 따지니, 식당 주인이 “수저는 예산이 부족해서 채우고 있는 중이니, 일단 양해해달라”고 한다면, 그 주인에게 수긍할 수 있을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식당에서 수저와 같은 기본적인 ‘수단’이다. 내가 학원을 가지 못하고, 내가 일하러 가지 못하는데, 학교 입학 기회의 균등과 직장에서의 장애인 의무 채용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다. 혹자는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도 지금도 수저를 주지 않는 식당 주인은 틀린 것이다. 사회는 각 구성원의 집합체이니, 어쩌면 나부터 그저 불편하지 않게 살아온 것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오늘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지 반성해본다.
“나는 과연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