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6일 근로자가 기본 40시간에 연장 12시간을 더한 주당 52시간까지만 일하게 허용하던 것을 주 6일 근무 기준 최대 69시간(7일 기준은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되, 더 일한 것에 대해서는 추후 단축 근무와 장기휴가로 쉴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의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노사가 합의하는 경우 주당 최대 69시간 또는 64시간 근로를 허용하면서 주 4일 근무가 가능한 선택 근로제를 확대한다고 설명했다. 일주일에 6일을 하루 11시간씩 일할 수 있고 야근한 만큼 휴가를 갈 수 있어 주 4일 근무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은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한다는 비판과 근로자의 과로를 막을 안전판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애시당초 실효성, 보편성, 수용성, 가능성에 있어서 적잖은 의문부호를 달고 있었다. 수용성과 입법 가능성까지를 따져보면,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 조장 가능성만 높이는 개편안이었다.
우선 근로 시간 유연화가 다시 과로 사회를 조장할 것이란 편향된 프레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지만, 사용자 편의성을 극단적으로 보장하는 탓에 노사 간 협의를 저해하게 됨으로써 실효성이 낮고, 보편성 측면도 서구를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다수가 근로 시간을 줄이는 추세와 비교해 볼때 보편적 흐름에 역행한다.
수용성 측면은 정부가 노동단체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추진으로 노동 주체의 목소리가 아예 반영되지 않았다. 입법화 가능성도 애초부터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개편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마당에 ‘묻지마식’의 입법 추진은 그렇지 않아도 당리당략에 대립이 첨예화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정치권의 갈등을 오히려 부추길 공산이 컸다.
또한 “현장 상황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데다가 ‘엠제트(MZ)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지난 3월 9일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한다.”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4일 1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집중 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현행 52시간제에서 근로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2030 세대’의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이다. 정부는 근로 기준을 정하는 일에 더욱 공정하고 신중하고 면밀하게 접근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밑그림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차례다.
개편안은 찬반이 분명히 갈린다. 근로자 간에도 업종 간에도 규모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반도체·철강·기계·게임 같이 납품 마감이 존재하는 업종이나 계절이나 업무 프로세스에 따라 집중 근로가 필요한 업체의 종사자는 찬성이 많다. 왜냐면 당장 마감이 코앞인데 주 52시간을 지켜가며 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중소기업 종사자는 대체 인력이 없어 휴가로 보상받지 못할 ‘공짜 노동'의 부활을 우려해 반대가 많다. ‘주 단위’ 근로 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통합해 확대하고 야근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린다. 저녁 있는 삶이냐와 휴가가 긴 삶이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근본적인 바람은 휴가가 됐든, 수당이 됐든 야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근로 시간 규제가 반드시 획일적일 필요는 없을 뿐만 아니라 업종별로나 규모별로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일해야 할 사람은 일할 수 있게 하고 쉴 사람은 쉬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근로의 주체는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은 당연하고 마땅하며 의당 존중돼야 한다.
돌이켜보면, 주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주당 최장 52시간을 근무하는 체계는 2018년 7월부터 공공기관 및 공기업과 300인 이상 민간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이후 2021년 1월 중소기업, 같은 해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체에도 주 52시간 근로제도가 확대 시행됐다.
그동안 ‘선택 근로제’와 ‘탄력근로제’ 등을 통해 주 52시간 근로제도의 예외가 생기긴 했지만, 근로 시간 산정 단위를 1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확대하여 주당 최장 69시간 근로를 가능토록 개편하는 시도는 지난 3월 6일 발표한 입법예고(안)이 처음이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까지 주당 최장 근로 시간은 68시간이었다. 고용 당국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의 휴일을 ‘1주일’의 개념에서 제외했고 휴일 이틀 동안 하루 8시간씩 16시간의 근로 시간을 더하면 7일 동안 최대 68시간의 근로 시간 계산이 나왔다. ‘주 52시간제 후퇴’라는 반발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 52시간제는 과도한 장시간 근무를 없애고 일과 가정의 양립과 병존의 문화를 조성하는 기폭제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았다. 편법으로 주 52시간제를 어겨가며 장시간 근무하거나, 포괄임금제와 같은 근로시간제도를 형해화(形骸化)시키는 임금체계가 활용되는 등 실제 근로 현장에 안착(安着)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동시간 감축 정책에도 한국이 여전히 오랜 시간 일하는 국가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3월 15일 한국행정연구원의 ‘한국과 주요 선진국 노동시간 규제 현황 비교’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체 취업자의 연간 실제 노동시간은 지난 2021년 기준 1,915시간이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716시간인데 이보다 무려 199시간이나 긴 것으로 특히 OECD 회원국 가운데 독일(1,349시간), 덴마크(1,363시간) 등과 차이가 컸다. 독일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노동시간이 1년에 무려 566시간이나 길었다.
이 외에도 프랑스(1,490시간), 영국(1,497시간), 일본(1,607시간) 등이 OECD 평균보다 노동시간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도 1,607시간으로 한국보다 연간 300시간 적게 일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취업자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40시간으로 OECD 평균인 36.8시간보다 3.2시간이나 길고, 주요 7개국(G7) 평균인 35시간과 비교해 무려 5시간 더 많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 국가’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3월 16일 정부의 근로 시간 유연화 방침에 대해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윤 대통령은 정부가 주당 근로 시간에 대해) 적절한 캡(Cap │ 상한)을 설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긴다며 보완을 지시했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제 개편안은 대폭 수정될 전망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사용자 측과 노동자 측은 반대 방향의 의사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첨예한 대립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론을 최대한 수렴해 사회적 합의와 절충점을 찾아야 할 중차대한 사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은 “1주간의 근로 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법 제53조 제1항에서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근로 시간을 산정함에 있어서 주 40시간에서 출발해야지 굳이 주 52시간에서 출발하려는 인식 자체가 인간의 기계화 시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인간은 노동만 하는‘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꾸준히 진화할 뿐 돌리면 돌아가는 기계가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의 경제 상황에서 사용자 측의 의견도 듣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차제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단체에 가입한 청년이나 아예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청년 노동자들의 의견을 포함한 노동계 전체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 주체의 목소리가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