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도·감청 후폭풍 수습, '유진 초이'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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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도·감청 후폭풍 수습, '유진 초이'가 보고 있다
  • 권대경 기자
  • 승인 2023.04.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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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경 정경부장.
권대경 정경부장.

최근 영화나 드라마 같은 현실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잦다. 코인 투자에 따른 원한 관계로 강남에서 40대 여성이 납치돼 청부 살해되는 일이 있는가하면, 학원가에서는 마약을 탄 음료를 학생들에게 시음하게 하고 학부모를 협박하는 학원공포물도 나왔다. 

이번에는 첩보물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고위급 당국자를 도·감청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최첨단 기술의 도·감청 방법이 등장하며, 대상은 정부 최고위급 관료다. 

일단 대통령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말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이른바 돌발 변수가 터졌기 때문이다. 특히 도·감청이라는 매우 민감하고도 예민한 소재는 상황에 따라서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폭발력을 갖는다. 이는 대통령실이 '한미동맹은 굳건하다'는 기조 아래에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인 이유기도 하다. 

사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있다. 대표적으로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당시 미국이 알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2002년부터 10년 넘게 도청한 사실이 밝혀지며 유럽연합(EU)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당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동맹국 사이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해명을 촉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프랑스도 아니며 독일도 아니다. 우리는 불과 수 십 킬로미터 앞에 핵으로 무장한 이들을 마주하고 있으며, 수 십 킬로 뒤에는 호시탐탐 바다를 건너오려는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수 백 킬로 반경 내에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이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대국이 자리하고 있다. 강대국 반열에 올라 있는 프랑스와 독일과 달리 한국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두 진영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외교 명제 중 하나가 바로 ‘동맹’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한미동맹은 외교 전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동맹이라는 것 모두 국익에 기반한다. 동맹도 다 국익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과거 외교현장 취재를 할 때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한미 동맹을 '유리'에 비교했다. 그의 말인 즉슨 유리는 외부의 위험 요소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반대로 이 유리가 뜻하지 않게 깨지면 오히려 내부에 더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하게 다뤄야 하면서도 관리를 잘 해야 하는 게 동맹이라는 논리다. 

이에 따라 정부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되 물밑에서는 미국 당국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우리의 상황을 잘 이해시키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외부적으로 어느 정도의 선에서 목소리를 낼 것인지를 조율해야 한다. 굴욕외교로 비춰지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 전제다.

명분을 갖고 실리를 취하는 현명한 외교술이 여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들에 대한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파악하는 과정 속에서 사안에 따라 유효한 외교적 결정타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악재는 맞지만 잘만 대처한다면 호재의 단초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실제모델 독립운동가 황기환 애국지사가 순국 100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극중 인물 유진초이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황 지사가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다. 섬세하고 세련된 외교술을 펼치는 대한민국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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