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에서 야기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안 발표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도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겠지만, 초점은 전관예우 관습 근절과 조직 기능 축소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현재의 모럴해저드를 야기한 것은 비대해진 조직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 선진화 명목으로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합쳐지면서 조직이 비약적으로 커진 후 직원들 통제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L’과 ‘H’가 이권을 나눠 먹는 구조라는 말까지 공식석상에서 나왔다. 그런 점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이한준 사장의 문제인식 자체는 정확하다.
늘 그렇지만 문제는 솔루션이다. 2년여 전 땅투기 사태가 터졌을 때도 LH 쇄신안에는 전관예우 관습 근절과 조직 기능 축소가 포함돼 있었다. 일주일 후 공개될 쇄신안에도 당시와 용어의 차이는 다소 있을지라도 내용은 크게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솔루션 방향 또한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국민이 원하는 비리 없는 주거안정화는 LH 측의 방만경영만 지양한다고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LH의 존재 이념인 서민 주거 안정화는 전신인 주공과 토공 시절부터 정치논리에 휘둘려 왔다.
역대 정부가 포퓰리즘성으로 신도시 정책을 쏟아내니 억지로 임대단지를 짓게 돼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과정에서 매입된 토지는 개발 소문으로 가치가 오른 만큼 민간에 비싸게 팔려 시행사나 지자체, 해당 지역구 의원들은 어마어마한 차익 실현이 가능하다. 역으로 토지가치가 떨어지면 그게 다 부채로 남는다.
LH의 고질병인 높은 부채비율이나 모럴해저드가 한두 해 일이 아닌데 개혁하자는 소리만 요란하고 정작 바뀌는 게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LH가 공공성을 지향하는 한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표도 얻고 뒷주머니도 챙길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심지어 주공과 토공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본사를 어디다 둘 것인가를 두고 정치권에서 말이 많았다. 후보지가 당시 영부인 본가가 있다는 이유다. 결은 다소 다르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양평고속도로 개통지를 놓고 정치공방이 불거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태생부터 정치적 이해관계로 짜깁기 된 누더기로 만들어 놨는데 LH 일련의 문제를 방만경영 때문이라고만 볼 수 있을지. 요는 정부와 정치권부터 문제인데 최근 비리가 또 불거졌다고 해서 정부 주도로 LH를 개혁하겠다는 게 넌센스다.
여러 문제에도 LH가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공공성을 지향하고 정치인들이 이를 십분 이용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정말 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조직을 민영화 해 과거처럼 업무를 나눠 슬림화 하는 것도 검토대상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안은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 대형 토지개발이나 주택 사업은 민간에서 자금 등을 감당 못하고 부채문제나 비리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명목이다.
민영화를 하면 특정 민간만 배를 채우고, 부채문제가 여전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지금만 하겠는가. 최악이 지속될 바에야 차악도 검토해봐야 할 정도로 주거 안정화는 중요한 문제다. KT나 포스코도 민영화 이전에는 논란이 많았고, 현재도 비리문제에서 아예 자유롭다 보장할 수 없지만 결국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더욱이 지금은 80~90년대가 아니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에서 대형 철교나 도시개발을 컨소시엄 없이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조직 슬림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LH와 민간이 중복되는 업무를 줄여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정치권은 총선 등을 의식하지 말고 정말 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민영화를 포함 ‘제로’(0)부터 고민하는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