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이스라엘-親팔레스타인 기조 따라 중동 시장 블록화
유가 변동·물류비용상승·결제지연 등 리스크 산재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무력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중동 진출 한국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9일 한국무역협회가 올해 발표한 대(對)중동·북아프리카 수출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對) GCC 6개국 수출은 102억6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8.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레반트(이라크 포함) 5개국 수출은 42억달러로 16.4% 상승했다. 지난해 이란 수출은 전년 대비 0.8% 증가한 2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중동 주요 교역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이 신흥 시장으로 급부상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국내 기업계와 중둥과의 교두보를 놓는데 대대적인 지원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는 연말까지 무역금융 78조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수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한·중동 정상외교에서 거둔 경제외교 성과를 이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우방국인 미국-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하마스) 분쟁은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이슬람권인 중동 국가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래 미국은 적대국가인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주변국들과 경제 안보를 세울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 또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중동 시장 진출을 구체화할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나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려는 동향을 보이고, 아랍 국가들이 미국에 가자지구 휴전을 중재하라는 압박을 가하면서 미국이 구상하는 중동내 경제 동맹이 위태롭게됐다. 최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분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겠다고 밝혔다.
한국-중동 국가 무역 중 유일하게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이란은 아예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 형편이다. 중동 국가는 대표적인 산유국인 만큼, 기본적으론 무역수지에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다. 반면 이란에선 국내 의료용기기, 산업용 전기기기, 섬유 및 화학기계가 인기를 끌면서 무역수지 1억8000만달러의 흑자를 냈다.
이팔 전쟁으로 중동 주요 국가들과 미국 동맹국의 사이가 틀어질 경우, 한국 정부 및 기업이 중동에 들였던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중동 국가 중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행히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지지하는 양 세력 모두 직접적인 개입은 어려운 상태로, 우리 기업의 산업 시설이 직접 타격될 것이란 우려는 적다. 다만 종교가 같은 아랍권 국가들이 같은 이해관계로 뭉친 만큼, 만약 우리 정부 및 기업이 현지인의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중동 시장 퇴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무엇보다 산업계는 당장 중동산 석유의 국내 공급부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중동은 세계 최대의 석유 산지인 만큼, 향후 해당 국가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해 동맹국인 한국에게도 유가를 무기화할 수 있다. 최근 세계은행은 이-팔 전쟁이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157달러에 달할 것으로 경고했다.
김지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텔아비브무역관은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이 사태의 영향으로 인한 장단기적인 판매 감소가 예상되며 현지 인력 공백 영향으로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며 “현지 신규 진출 및 수출 확대가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만약 사태가 확장되거나 장기화될 경우 유가 변동과 물류비용 상승, 결제 지연 등 잠재적인 리스크가 추가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