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야, 내년 총선 의식해 뒤늦은 '중처법 유예' 발표
정부 추진 1~2차 경제형벌 법률 개선과제 140건 중 1건만 국회 통과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기업계가 경영 부담을 가중하는 과도한 경제형벌의 개선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노동계의 반발로 좌절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 단체들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과도한 경제형벌을 조속히 개선해 줄 것을 촉구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명 노란봉투법에 대해 재추진을 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법안은 불법 파업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고 하도급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는 기업에게 지나친 부담을 전가한다며 법안의 ‘완전 폐기’를 주장한다.
지난 8일 국회에서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 3법'을 강행 처리했고,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렇게 폐기 수순을 밟는 줄 알았으나, 야당의 재입법 예고에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국회에 등장할 전망이다.
정부와 여야 정당이 노란봉투법에 집중하면서, 정작 기업계의 발목을 잡는 규제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난 형편이다. 당장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유예 및 전면시행 여부는 연말인 지금까지도 결정되지 못했다.
최근 정부와 국민의힘은 중처법을 2년 더 유예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정은 법안 적용 대상인 50인 미만 사업장 83만 곳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법 확대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정부와 유예를 논의할 생각이 있다며, 이전에 비해 전향적인 태도로 전환했다.
이에 노동계는 전면시행을 주장하며 유예 중단을 촉구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중소기업들의 준비가 부족해 시행을 유예한다’는 당정의 설명을 비판하며 “법 공포 후 시행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업계는 중처법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이 노동계의 반발을 키웠다고 본다. 중기중앙회는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올해 8월에도 50인 미만 사업장들이 중처법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통계를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정치권이 이를 적극적으로 인용해 유예를 추진했다면 어느 정도 명분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한 중소 제약사 인사팀 관계자는 “두 정당이 일 년 내내 가만히 있다가 확대 시행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유예안 카드를 꺼내 들었단 건, 사실상 내년 총선을 의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또 경제 단체가 건의한 경제형벌 개선안 대부분이 국회에서 계류되며,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형국이다. 대한상의는 최근 "정부가 기업의 자유·창의를 가로막는 경제형벌 조항을 일제 점검해 지난 1월과 4월에 140건의 과제를 담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입법이 더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회에 제출된 경제형벌 과제 중 본회의를 통과한 과제는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과된 1건은 벤처투자법상 무의결권 주식을 취득한 대주주가 중기부장관의 주식처분명령을 위반한 경우에 내려지는 처벌이다. 기존에는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했는데 이를 3000만원 이하 과태료로 개정했다.
상의 측은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형벌 개선과제 가운데 시의성 높은 과제부터 입법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경제 관련 법률에 형벌조항이 외국보다 많은 데다 엄격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외국인의 국내 투자를 저해한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식품위생법상 손님을 꾀어서 끌어들이는 호객행위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업계는 호객행위를 형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기존의 허가·등록 취소, 영업정지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 설립·전환 신고의무 위반 시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이를 벌금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동일인과 임직원에 부과하는 과태료 금액 수준에 차등을 둘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현행 환경범죄단속법은 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해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한다, 업계는 사망과 상해를 구분해 사망의 경우는 기존 법정형을 유지하되, 상해의 경우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으로 하향 조정하는 개선안을 내세웠다.
대형 바이오사 관계자는 “의원들이 민심을 얻기 위해 기업을 속박하는 엉터리 규제를 내도, 쉽게 법안이 돼버리는 것이 문제”라며 “발의된 법안이 기업 활동을 제약하지 않는지 사전에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