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으로 여야 협상 실종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윤석열표' 법안들이 1월 임시국회에서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쌍특검법'과 '이태원 특별법'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다른 법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법안 처리만 요구할 뿐, 좀처럼 대(對)야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내달 1일 본회의를 열고 국회에 묶여 있는 민생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날 본회의는 1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다. 여야 원내 지도부의 '2+2 협의체'도 가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상당수 쟁점 법안들이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갈 전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확대 적용을 2년간 유예하는 방안이다. 여야 협상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지난 27일 이미 확대 적용이 이뤄져 산업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윤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근로자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특히 경영난에 허덕이는 83만 영세업자의 처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직접 유예안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 22일 민생토론회에서 야심차게 발표한 '대형마트의 온라인 새벽 배송 허용'과 '공휴일 의무휴업 규제 폐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 당일 토론회에 불참하긴 했지만, 해당 내용은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기로 돼있었다. 불필요한 규제 혁파를 내세우는 정부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이 경우도 '골목 상권 침해'를 우려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회 심의 단계부터 반대하고 있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마트 관련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필요하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 설치를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특별법'도 비슷한 맥락으로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이 법은 '원전 생태계 복원'을 약속한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관련 법안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핵심 기술 연구를 위한 R&D에 1조4000억원을 투자해 요소기술 104개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가 시설의 저장 용량 등을 두고 이견을 보이며 이 법도 산자위에 계류 중이다.
이밖에도 산업은행 부산이전을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 국내 방산업체 수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출입은행법 개정안 등도 여야 협상이 지연되면서 1월 국회 처리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법(法)맥경화'의 원인으로는 쌍특검법 및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정국으로 인한 극심한 갈등 구조가 꼽힌다. 일각에서는 야당이 주도한 법안들에 대해 윤 대통령이 '무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 협상 분위기 자체가 조성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매일일보>에 "결국 정치라는 게 받기 위해서는 줄 것은 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야당의 요구사항을 일정 부분 수용해가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의 '불통 거부권'에 대한 답답함을 당연히 갖고 있다"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는 별개로 여당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더 전향적인 협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