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일‧가정 양립제도 자리 잡고 중장기적 인프라 개선 병행해야"
매일일보 = 권영현 기자 | 저출산 문제가 국가 핵심과제로 자리매김하면서 정치권에서 각종 현금 지원성 정책과 공약을 내놓고 있으나 중장기적 사회인프라 개선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8년 연속 감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인 꼴찌에 해당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저출산 현상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저출산 문제 해결과 관련해 각종 공약과 정책을 내놓고는 있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 출산 및 양육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지원 내용을 담았다. 기획재정부 자료를 보면 올해 출산 가구 주거안정 지원과 육아휴직 확대, 취약계층 아동 맞춤 돌봄 강화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육아휴직을 늘리는 방안으로 현재 150만원인 육아휴직 급여의 월 상한액을 최저임금이나 그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정기간 육아휴직 의무화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여야도 총선을 앞두고 저출산과 관련된 공약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앞서 배우자 출산휴가를 1개월(유급) 의무화하고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월 210만원까지 늘리는 내용의 1호 공약을 발표했다. 이외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 월 상한도 확대(200만원→250만원)와 연 5일 유급 자녀돌봄 휴가, 중소기업 육아휴직 대체인력지원금 증가 등의 안도 담겼다. 국민의힘이 추산한 총 소요 예산은 3조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신혼부부에 가구당 1억원을 10년 만기로 대출하고 출생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을 줄여주는 공약을 내놨다. 또 2자녀 출산시 24평, 3자녀 출산시 33평의 분양전환 공공임대 주택을 제공하고 우리아이 키움카드‧자립펀드를 통해 총 1억원의 혜택을 주는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산한 필요 예산은 총 28조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금 중심의 지원 공약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인프라 자체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 일자리로 대변되는 좋은 일자리의 부족은 우리 사회에서 대학 입시경쟁의 과열과 사회적 이동성의 저하와 출산율 하락, 여성 고용률 정체, 수도권 집중 심화 등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에서는 모성보호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만큼 대기업 일자리를 늘려 여성 근로자가 실제로 모성보호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는 “젊은층이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는 상황이 돈으로 해결될 지는 회의적”이라며 “한국에서 현재 생활이 불안하거나 이후의 상황이 불확실한데 자녀를 낳아서 자기가 자녀들을 이렇게 살 수가 있을지를 고민하면 너무 경쟁에 시달리고 불안정한 여건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일어난 현상이기에 우리 사회와 국가를 전반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교육이나 노동, 주거현실 등이 전반적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마음을 편히 살 수 있을 때 아이를 낳고 하게 되는데 현금을 지원하면서 나온 결과가 현재의 저출산 현상인데 젊은 사람들이 돈을 바라면서 아이를 낳겠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 속에 최근 30대 여성들이 출산보다는 경력을 중시하면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는데 일‧가정양립 제도들이 중소기업에도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북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도 일‧가정양립 제도가 잘 마련이 부분이 있지만 이를 기업에서 실행하는 방안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금 지원 정책에 너무 힘을 쏟는 것보다는 기업 지원을 통한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 등에 역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