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며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데, 관련 제도는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아 업계 우려가 크다. 특히 정비 분야에서 전기차 제작사의 기술 공유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전기차 소비자들의 정비 편의와 접근성 저하로 직결될 수 밖에 없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54만3900대다. 지난 2022년 38만9855대와 비교해 39.5% 늘었다. 전기차 누적 대수는 지난 2020년 처음 10만대를 넘긴 뒤 매년 10만대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래차의 모든 수리가 가능한 업체는 302개 업소에 불과하다. 친환경차 보급속도에 비해 자동차 정비 등 사후관리 부분이 매우 취약한 상태다.
전국 3만3000여 정비사업소(카센터)는 현재 내연기관차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연합회 회원사는 1만8000곳으로 지금까지 주로 가솔린차와 디젤차 등을 정비해 왔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완성차 정비 기술과 노하우를 독점하면서 전국적으로 대형 서비스센터를 확장하면서 영세 정비사업소는 시장 경쟁력을 잃고 있다.
‘자동차 관리법 제32조의 2’는 자동차제작사가 정비관련 장비 및 자료 제공의 의무를 준수토록 정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등 국산차 업계 뿐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등 수입차 업계에서도 전기차의 정비 정보를 공개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제조사에게 정보 제공 이행명령을 지금껏 단 한차례도 내린적이 없다. 이행해 달라고 촉구할 것이 아니라 강제해야 한다.
이같은 상황을 더 크게 공론화하기 위해 최근 국회에서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연합회)는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지난달 28일 ‘수리권 보장 : 자동차 정비 및 유지보수 정보 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정보 공개와 안전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친환경 차량들을 정비할 수 있는 인력을 늘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최신 기술에 맞춘 정비 인력의 교육과 훈련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문제는 이 세미나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 제작사는 한 곳도 없었다는 점이다. 친환경 차 시장의 주된 플레이어인 제작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정비 기술 공유를 통한 시장의 활성화보다는 제작부터 정비까지 모든 채널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대도시나 중소도시를 비롯해 영세 정비 사업소의 폐업이 크게 늘고 있는 점이 그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