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대출’ 되나 안 되나…오락가락 금융당국에 은행창구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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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요자 대출’ 되나 안 되나…오락가락 금융당국에 은행창구 ‘혼란’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4.09.11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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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주문에 은행권 '실수요자 보호' 위한 예외규정 마련
시시각각 변하는 대출 정책에 은행원도 "너무 복잡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가계 대출이 불어나는 걸 막겠다며 대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펴 온 은행권이 이번에는 앞다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마련하고 나섰다. 투기가 아닌 실수요 목적으로 은행을 찾은 사람들까지 퇴짜를 맞는 일이 반복되자 ‘실수요자 피해는 없어야 한다’며 각종 조치를 내놓는 것이다. 다만 은행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라 대출받는 사람들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실수요자 증명을 위해 은행에 각종 ‘구비 서류’를 내야 할 정도로 까다로워지고, 은행마다 정책도 달라 대출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 정책이 시시각각 변해 은행 직원들도 완벽하게 (정책을) 숙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창구에서 상담하는 직원들도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권을 향한 잇단 발언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기야 이 원장이 전날 은행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정책혼선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사과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가계대출 관리 강화 조치 중 1주택자 등 실수요자에 대한 예외 조건을 마련했다. 

전날 신한은행은 주택 신규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을 무주택 세대에만 허용하면서도 실수요자 예외 조건을 적용하기로 했다. 주담대는 1주택 소유자의 처분조건부 신규구입목적 예외를 허용한다. 신규주택 구입목적 주담대 실행일 당일에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으로 구입 주택 매수 계약을 체결한 차주가 대상이다.

또 임차보증금 반환목적의 생활안정자금 주담대는 1억원을 초과할 수 있도록 했다. 최대 연 소득까지 가능한 신용대출은 본인 결혼이나 배우자나 직계가족 사망, 자녀 출산 등의 경우 연 소득의 150%(최대 1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은 8일부터 서울 등 수도권에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기 위한 목적의 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전세자금대출도 전 세대원 모두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무주택자에게만 허용한다. 다만 결혼예정자와 대출신청시점으로부터 2년 이내에 주택을 일부 또는 전부 상속받은 경우에는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직장변경, 자녀교육, 질병치료, 부모봉양, 이혼이나 분양권·입주권 보유, 분양권 취득의 경우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다.

KB국민은행도 주담대와 신용대출 운영 기준을 강화하면서 실수요자를 위한 문을 열어뒀다. 서울·수도권의 1주택 소유 세대 중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로운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와 결혼예정자, 상속에 대해서는 신규구입목적 주담대 예외를 허용한다. 또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인 주담대 생활안정자금은 연간 1억원 한도를 초과해 취급할 수 있다.

국민, 신한, 우리은행은 예외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다양한 사례의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지 않도록 실수요자 심사 전담팀도 운영 중이다.

은행들의 이같은 조치는 가계대출 관리를 위한 대출 심사 강화 기조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은행권 자율적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해 시장의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고 대출수요자들은 불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이제까지 모든 은행이 동일하게 감독당국의 대출규제만 적용하다 보니 은행별 상이한 기준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자율적인 가계대출 관행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 시점에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장의 발언과 쏠림현상 등을 고려하면 은행권의 예외 조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각 은행이 시행하는 예외 조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은행의 방안 중 괜찮은 것이 있으면 참고하는 식으로 비슷하게 조정되겠지만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줄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대출 잔액을 보면서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대출 규정으로 인한 차주들의 혼란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관련 규정이 조정되면서 차주들이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받아 자금조달계획을 세운 후 실제 대출을 실행하는 시점에는 한도나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갑작스러운 대출 ‘절벽’은 피한 셈이지만, 실수요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서류를 은행에 제출해가며 대출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혼을 위해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 A씨는 “주택 계약서 정도는 원래 (은행에) 내던 서류지만, 관공서도 아니고 예식장 계약서까지 꼭 필요한가”하고 말했다.

제각각인 은행 대출 정책이 외려 대출 문턱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보통 은행 2~3 곳에서 대출을 알아보는 소비자들은 은행마다 다른 대출 정책 자체를 문턱으로 느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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